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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오늘 산 책은 찬란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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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책방오늘,’ 문 닫아
손님들 방명록에 “다시 만나자”
책방은 오래된 친구 같은 곳
‘오늘,’ 쉼표처럼 지속될 것

오늘 ‘책방오늘,’이 문을 닫았다. 그렇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유명해졌던 그 동네책방이 7월 7일 자로 영업을 종료했다. 나는 오늘 책방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책방오늘,’에 갔다. 장맛비가 쉬어가는 사이, 끈적끈적한 바람이 골목으로 불어왔다.

‘책방오늘,’ 안은 시원했고 이미 손님 세 명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아쉬운 표정을 숨긴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뒤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분은 창가 요모조모 살폈다. 서가의 모든 책은 며칠 사이 싹 다 팔렸고 남은 열 권 남짓의 책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별로 망설임 없이 마거릿 드래블의 ‘찬란한 길’을 샀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진도가 나가지 않아 절반도 못 읽고 반납한 책이었다. 다른 책도 사고 싶었지만, 오늘 올 방문객을 위해 남겨두었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나는 책을 사며 엽서와 카드를 선물받았다. 잠시 책방 가장자리에 있는 일인용 의자에 앉아 흰색 몽당연필로 방명록에 인사를 남겼다. 아주 짧게 진심 담아. 방명록에는 중국에서 온 독자의 편지도 있고 엄마와 함께 온 아이가 쓴 공룡 얘기도 있었다. “책방 오늘, 작별하지 않으며 다시 만나요!”라는 문장 아래엔 그저께 날짜와 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요즘 무슨 책 읽어?”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묻는 친구가 있다. “점심 뭐 먹었어?”가 아니라 내가 먹는 영혼의 양식이 더 궁금한지, 내가 가방에서 꺼내거나 말하는 책 제목을 받아적는 친구. 우정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믿고 사보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친구.

오늘은 우정 어린 친구 한 명이 떠나는 날 같다. 몇 해 전 ‘책방오늘,’에 처음 들렀을 때, 나는 조해진 소설가가 추천하는 책, 정확하게는 그가 손 글씨로 추천사를 써서 붙여놓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 ‘아주 편안한 죽음’을 샀다.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에 붙은 메모지 푸른 글씨를 읽으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나는 풀 위로 머리를 내민 백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심장의 줄기로부터 즐거운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가정에 살고 있으며 한 램프에서 불타오른다.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동네에 있던 책방 하나가 사라지는 건 좋은 친구가 떠나는 것 이상의 사건일까? 살다 보면 책방보다 더 좋은 장소를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책방들을 좋아한다. 길모퉁이 책방, 대로변 책방, 학교 앞 책방, 해변의 책방, 오지의 책방, 섬의 책방, 밤의 책방, 세상 끝 책방…. “이제 우리는 어디서 만나요?” 내가 운영하던 책방이듬 문을 닫던 날, 책방 단골이었던 분들이 투덜거렸다. 그들은 컴컴한 책방 앞에서 답답한 듯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생각보다 잘 지내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또 다른 책방에서 아직 오지 않은 이야기를 기다린다.

‘오늘’이라는 이름의 책방. 오늘이 아니라 오늘 뒤에 쉼표가 붙어 있는 ‘책방오늘,’ 한강 작가님이 지은 이름일까? 문장부호 ‘쉼표’로 인해 오늘, 오늘, 오늘이 연이어 지속될 것 같다. 더 낫거나 못하거나 하지 않은, 보통의 나날이 연속되리라는 긍정.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라고 노래한 시도 있지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절박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시 구절대로 살지 못해 자책하거나 무기력에 빠질 까닭은 없다. 여기 물웅덩이가 사라져도 저기에 호수가 생겨난다.

어떤 오늘은 한가로이 좋아하는 걸 하며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 누워서 책을 보는 건 무용한 짓일까? 나는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덮어두었던 책을 펼칠 사람. 책만큼 나를 멀리 데려가는 친구는 없다. 이제 이 글을 다 써간다. 드디어 나는 ‘찬란한 길’의 세 여자가 찾아가는, 소설 제목과는 정반대의 세계로 밤 피서를 떠날 것이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