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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은 왜 그 길을 택했나”…전투 코끼리가 푼 2200년 미스터리

英옥스퍼드대·獨 연구팀, 한니발 군대의 에너지 소비량 비교·분석
“트라베르세트 경로, 최대 19% 효율적…보급품 44톤 절감 가능”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군을 기습하기 위해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은 경로와 관련해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다른 경로보다 유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군을 기습하기 위해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은 경로와 관련해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다른 경로보다 유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군을 기습하기 위해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은 경로는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런데 현대 아프리카코끼리의 에너지 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한니발이 선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로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새롭게 떠올랐다.

 

1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와 독일 통합생물다양성연구센터(iDiv) 연구팀은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에 드는 에너지 비용’ 보고서를 통해 전투 코끼리를 포함한 한니발 군대의 에너지 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4개 후보 경로 중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다른 경로보다 최대 19%까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니발 바르카는 기원전 218년 병사 4만6000명과 말 7000여 필, 전투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기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한 군사 작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2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정확히 어떤 길로 알프스를 넘었는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경로는 고대 역사가 폴리비오스(Polybius)의 기록과 지형, 지질학적 증거 등을 토대로 클라피에 고개를 지나는 길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여겨져 왔다.

전투 코끼리를 포함한 한니발 군대의 에너지 소비량 분석 결과 4개 후보 경로 중 트라베르세트(Traversette) 경로가 다른 경로보다 최대 19% 적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PNAS, Emilio Berti et al.
전투 코끼리를 포함한 한니발 군대의 에너지 소비량 분석 결과 4개 후보 경로 중 트라베르세트(Traversette) 경로가 다른 경로보다 최대 19% 적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PNAS, Emilio Berti et al.

연구팀은 최근 문헌학·지형형성학 연구를 통해 트라베르세트 고개가 새로운 후보로 떠오른 데 주목하고, 대규모 군대의 이동 효율성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몸무게가 약 3톤에 달하는 전투 코끼리가 하루 수백㎏을 먹어야 하는 점을 고려해 현대 아프리카코끼리의 이동과 에너지 소비 연구를 바탕으로 병사와 말, 코끼리가 알프스를 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한 뒤 클라피에·트라베르세트·몽주네브르·몽세니 등 4개 후보 경로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한니발 군대가 알프스를 넘는 데 필요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5.42테라줄(TJ)로 가장 적고, 이어 몽주네브르(6.02테라줄), 클라피에(6.28테라줄), 몽세니(6.45테라줄) 순이었다. 

 

다른 후보 경로를 선택했다면 트라베르세트 경로보다 최대 19%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5일간의 알프스 횡단에 필요한 식량과 보급품 규모를 크게 좌우할 수 있는 차이다. 트라베르세트 경로에는 식량과 보급품도 다른 경로보다 최대 44톤까지 적게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한니발이 오늘날처럼 에너지 소비량을 계산할 수는 없었겠지만, 오랜 행군 경험을 통해 어느 경로가 가장 적은 에너지가 드는지는 직관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병사와 말, 코끼리가 체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알프스를 넘을 때 소모된 체지방량이 코끼리가 가장 낮았다는 점이다. 알프스를 넘는 동안 병사들은 체지방의 약 19%, 말은 11%를 소모한 반면 코끼리는 4%만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10월의 알프스산맥. Fritz Vollrath
10월의 알프스산맥. Fritz Vollrath

거대한 체구 탓에 가장 힘들었을 것으로 여겨졌던 코끼리가 오히려 에너지 부담은 가장 적었던 셈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알프스를 넘은 뒤에도 약 30마리의 코끼리가 트레비아 전투에 투입된 기록이 남아 있다며, 이는 코끼리들이 상대적으로 에너지 부담이 적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코끼리에게 더 큰 문제는 알프스 횡단 자체가 아니라 보급로가 끊긴 적지에서 먹이를 확보하고 혹독한 겨울을 버티는 일이었을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한니발의 정확한 이동 경로를 단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보급학적 제약을 고려할 때 트라베르세트 고개가 가장 설득력 있는 후보라고 평가했다.

 

에밀리오 베르티 iDiv 박사는 “코끼리를 포함한 대규모 군대의 생물학적 제약을 고려하면 트라베르세트 경로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동 연구자인 프리츠 폴라트 옥스퍼드대 교수는 “케냐에서 아프리카코끼리의 에너지 소비를 연구하며 얻은 지식이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경로를 둘러싼 오랜 역사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