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한 SK하이닉스 미국예탁주식(ADS)은 168.01달러에 장을 마쳤다. 공모가 149달러보다 12.8% 높은 가격이다.
ADS 10주가 국내 보통주 1주에 해당한다. 10일 서울 외환시장 주간거래 종가인 달러당 1501.4원을 적용하면 보통주 1주당 환산가격은 약 252만3000원이다.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218만원에 마감했다. 단순 계산으로 미국 가격이 약 34만3000원, 15.7% 높다.
오는 13일 국내 증시가 열리면 SK하이닉스가 250만원을 넘어설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15.7%를 국내 주가의 예정된 상승률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국내 증시가 문을 닫은 뒤 미국에서 새로 형성된 가격인 데다, 환율과 거래시간, 투자자 구성도 다르다. 미국에서 붙은 웃돈이 국내 주가로 그대로 넘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가격으로는 이미 ‘252만원 하이닉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 ADS 1주는 국내 보통주 0.1주를 나타낸다. ADS 10주가 국내 보통주 1주에 해당하는 구조다.
ADS는 공모가보다 약 14% 높은 170달러에 첫 거래를 시작했다. 장중 177달러까지 올랐다가 168.01달러에 마감했다. 공모가 대비 상승률은 12.8%다.
공모 단계부터 열기는 뜨거웠다. 로이터는 주문 규모가 공모 물량의 7배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공모가는 최근 3거래일 국내 평균 주가보다 2.7% 높은 수준에서 정해졌다.
상장 첫날 주가가 다시 뛰면서 국내 본주와의 단순 환산 격차가 15%대로 벌어졌다. 미국 가격만 놓고 보면 이미 ‘252만원 하이닉스’가 된 셈이다.
다만 15.7%는 같은 시각 두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비교한 수치가 아니다. 국내 종가는 10일 오후 3시30분에 확정됐고, 미국 종가는 그보다 훨씬 뒤인 한국시간 11일 새벽에 나왔다.
그 사이 미국 증시 흐름과 반도체주 수급, 환율 변화가 새로 반영됐다. 이 가격 차이를 곧바로 차익거래가 가능한 ‘확정 프리미엄’으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TSMC도 미국에서 13.7% 비쌌다
미국 예탁증서 가격이 본주보다 비싸게 거래된 사례는 이미 있다. 대만 TSMC가 대표적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TSMC ADS 1주는 대만 증시에 상장된 보통주 5주를 나타낸다. 같은 회사 지분이지만 미국 ADS와 대만 본주의 가격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TSMC ADS의 대만 본주 대비 평균 프리미엄은 지난해 12월 26%까지 벌어졌다. 올해 들어 대만 본주가 빠르게 오르면서 격차가 줄었지만, 지난 5월에도 평균 13.7%의 웃돈이 남아 있었다.
미국에서 TSMC가 10% 넘게 비싸다고 해서 대만 본주가 곧바로 같은 폭으로 오른 것은 아니다. 가격 차이는 수개월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두 자릿수 프리미엄이 TSMC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만 밍촨대 천야오퉁 교수와 차이잉처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TSMC ADR 프리미엄은 산정 방식에 따라 평균 1.8~3.3%였다. 2020~2023년 평균은 2.58%로 집계됐다.
최근의 두 자릿수 격차는 장기 평균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이다. 미국 시장에서 커진 AI 반도체 투자 수요와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 양국 증시의 거래시간과 유동성, 환율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TSMC 사례는 미국에서 높은 가격이 매겨져도 본주가 즉시 같은 가격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SK하이닉스의 15.7% 격차 역시 13일 국내 주가의 확정 상승률이 될 수는 없다.
◆같은 회사 주식인데 가격은 왜 다를까
이론상 싼 시장에서 주식을 사서 비싼 시장에서 팔면 가격 차이는 줄어든다. 실제 거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장 먼저 거래시간이 다르다. 한국 증시가 끝난 뒤 미국에서 나온 기업 뉴스와 반도체 업종의 움직임은 다음 국내 거래일까지 가격 차이로 남는다.
환율도 움직인다. ADS는 달러로, 국내 본주는 원화로 거래된다. 주가가 그대로여도 원·달러 환율에 따라 원화 환산가격이 달라진다.
예탁증서를 국내 보통주로 바꾸거나 국내 주식을 예탁해 ADS를 발행하는 과정도 실시간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예탁은행과 현지 보관기관, 증권사를 거쳐야 하며 수수료와 환전·결제 비용이 발생한다.
예탁계약과 관련 법규, 실제 업무 처리시간도 따져야 한다. 화면에 보이는 가격 차이만 믿고 즉시 차익거래에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투자자층도 다르다. 미국 기관은 한국 계좌를 개설하거나 한국 거래시간에 맞추지 않고도 달러로 SK하이닉스에 투자할 수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AI 반도체 종목을 선호하는 자금이 몰리면 국내 본주와 별개로 ADS에 웃돈이 붙을 수 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의 매도 물량이나 외국인 수급이 악화하면 국내 주가가 미국 가격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재평가 신호지만 상승 보증서는 아니다
미국 상장을 단순한 첫날 흥행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국 주식을 직접 거래하지 않던 미국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공모로 약 265억달러를 조달했다. 미국 외 기업이 진행한 미국 증시 주식 공모 가운데 최대 규모다. 공모 물량이 7배 넘는 주문을 받은 점도 미국 기관의 관심을 보여준다.
공모 전 로이터가 집계한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5.5배였다. 미국 경쟁사 마이크론은 6.66배였다.
미국 상장으로 투자자층이 넓어지면 두 회사의 평가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수치는 상장 첫날 ADS 급등 이전 가격을 기준으로 한 만큼 이후 주가 수준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13일 국내 주가는 ADS 종가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말 사이 미국 반도체주 흐름과 원·달러 환율,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최근 급등락에 따른 차익실현 물량이 함께 움직인다.
첫날 종가 168.01달러는 미국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에 국내 종가보다 높은 값을 매겼다는 신호다. 미국 상장이 기업가치 재평가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계산된 252만원은 국내 시장의 다음 종가가 아니다. 13일 SK하이닉스가 250만원을 넘어설 가능성과, 반드시 250만원을 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