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쪽 끝에 있는 지브롤터는 스페인이 아니고 영국 땅이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을 끼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바다 건너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거리는 9마일(약 14.5㎞)에 불과하다. 18세기 초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뺴앗아 점령한 것을 계기로 영국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12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스페인과 영국령 지브롤터를 가르는 국경 울타리가 오는 15일 철거되고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 그동안 스페인 국민이 지브롤터에 가려면 여권을 들고 국경 검문소에 가서 출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 한동안 유럽과 관계가 소원했던 영국이 다시 친(親)유럽 노선으로 회귀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
지브롤터는 주민이 약 4만명이고 영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영국 정부에서 파견한 총독이 명목상 국가원수처럼 행세하지만 실은 의회에서 선출한 ‘수석 장관’(영국 총리 해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등 고도의 자치권을 누린다. 크게 발달한 해운업과 관광 산업 덕분에 주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10만달러에 이른다.
반면 지브롤터와 접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스페인에서도 경제가 가장 낙후한 곳으로 꼽힌다. 남부 안달루시아의 실업률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지금도 스페인 국민 약 1만5000명이 지브롤터로 출퇴근을 하는 실정이다. 날마다 긴 줄을 서서 출입국 심사를 기다려야 했던 이들에게 국경 개방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경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되면 더 많은 스페인 국민이 지브롤터에서 직장을 얻고 물건을 팔며 침체한 지역 경제에도 생기가 돌 전망이다.
영국이 EU 회원국이던 시절 지브롤터는 스페인과 가깝게 지냈다. 2010년대 들어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를 추진하고 나서자 지브롤터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2016년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당시 지브롤터에선 EU에 계속 잔류하는 쪽에 표를 던진 주민이 96%로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브렉시트 후 스페인 국내에선 ‘영국이 지브롤터를 우리나라에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세계 각국은 영국의 지브롤터 지배를 공식 인정하거나 묵인하고 있지만, 스페인 정부는 17세기 이래 줄곧 자국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을 진압하느라 군사적 여유가 없었을 때 스페인군이 지브롤터를 공격했으나, 우세한 영국 해군력에 밀려 결국 포기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영국은 지브롤터·스페인 간 국경 개방이 이뤄지면 지브롤터 영유권에 대한 스페인의 입장이 한층 누그러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브롤터 자치정부를 이끄는 페이비언 피카르도(54) 수석 장관은 “지브롤터와 스페인, 더 나아가 지브롤터와 EU 사이에 시민과 상품의 완전한 유동성을 도입한 것”이라며 “지브롤터에 분명한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