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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출신보다 능력 중시, 나라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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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의 ‘인재 등용 원칙’ 국가 위기에 빛 발해
조직 구성원은 존중받을 때 스스로 책임져

“장수와 재상이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이보다 더 널리 회자되는 구호도 드물다. 고려 무신정권기 노비 만적이 동료들에게 외쳤다는 이 말은 본래 진나라 농민반란의 지도자 진승(陳勝)이 처음 내세운 구호였다. 진승은 끝내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만적은 거사를 실행하기도 전에 밀고로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이 한마디는 한국인의 강한 평등 의식을 상징한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흥미롭게도 세종 역시 이러한 사회적 특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왕자를 가볍게 여긴다”고 하여, 왕의 아들이라도 권위만으로 존중받기 어려운 풍토를 지적했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와 다투며 “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줄 아느냐. 때가 되면 내가 너의 상관이 될 것이다”라고 맞서는 장면도 나온다. 신분과 지위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이러한 기질은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문화적 특성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만적의 외침은 한국인의 평등 의식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신정권이라는 격변기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낳은 산물이기도 했다. 고려 무신정권은 흔히 쿠데타와 역쿠데타, 문신 학살과 왕의 잦은 교체가 이어진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러나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습도 보인다. 최씨 무신정권은 문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인재 정책을 펼쳤다. 집안이 미천하더라도 재능이 있으면 과감히 발탁했고, 재야를 떠돌던 이규보도 이 시기에 등용되어 국가의 중책을 맡았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인재 등용 원칙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가장 높게는 문장과 실무를 모두 갖춘 사람(能文能吏), 다음은 문장에는 뛰어나나 실무가 부족한 사람(文而不能吏), 그다음은 실무에는 능하지만 문장이 부족한 사람(吏而不能文), 마지막은 문장과 실무 모두 부족한 사람(文吏俱不能)이었다. 그는 이 기준을 병풍에 적어 두고 인사 때마다 참고하여 사람을 등용했는데, 출신보다 능력을 앞세우는 이러한 기준은 시대를 앞선 파격이었다.

이 같은 실력 우선의 인재 쓰기는 몽골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그 효과를 발휘했다. 세종 때 편찬된 ‘치평요람’에 따르면,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고려는 다른 여러 나라와 달리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철주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지휘관 이희적은 항복 대신 장정들과 함께 죽음을 택했고, 이어진 귀주성 전투에서는 군관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몽골군의 맹공을 한 달 넘게 막아냈다.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은 각종 공성(攻城) 무기를 동원해 파상적으로 공격해 왔지만, 성 안의 군민들은 병마사 박서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30일 만에 이를 격퇴하였다. 그 저항이 얼마나 처절하고 강렬했던지, 귀주성 전투에 참가했던 몽골의 한 노장은 “내가 어려서부터 종군하여 천하의 공방전을 여러 번 겪어 보았으나, 이런 항전은 처음 본다. 성 안의 장수들은 훗날 반드시 장수나 재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고려인들을 칭찬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고려인들로 하여금 그 무시무시한 몽골군의 ‘바람 같은’ 공격을 40여 년(1231~1273)이나 버텨 내게 했으며, 끝내 항복하고도 원나라의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부마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했을까? ‘치평요람’은 그 답을 최씨 무신정권의 개방적인 인재 정책과 신분 해방에서 찾는다. 최우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부곡과 소의 주민들을 대거 양민으로 해방하였다. 신분 해방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었다. 나라의 구성원들이 자신도 국가의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했고, 그들은 마침내 몽골 침략에 맞선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이 되었다.

집현전 학사들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나라를 지킨 것은 문신이냐 무신이냐가 아니었다. 출신보다 능력을 인정하고, 구성원들에게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심어 준 리더십이었다. 사람은 존중받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짊어진다. ‘치평요람’이 무신정권에서 읽어 낸 교훈도, 세종이 평생 실천한 리더십도 결국 여기에 있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