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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AI 시대, 거센 파고 함께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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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인공지능(AI)이다. 길을 걸을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토큰’ ‘에이전트’ ‘프롬프트’ 같은 용어가 들린다. 1∼2년 전만 해도 개발자 커뮤니티를 떠돌던 단어들이 일상 공간을 배회하고 있다.

세상이 달라진 걸까, 귀가 트인 덕일까. 올해 1월 사내 ‘AI프론티어팀’에 합류한 뒤 개발자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기자로서 묻고, 확인하고,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전념했는데 하루아침에 동료 기자들이 쓸 앱을 만들고 사내에 보급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동수 AI프론티어팀 기자
이동수 AI프론티어팀 기자

코딩의 ‘코’ 자도 몰랐던 기자에게 AI 코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설익은 구상도 지시 몇 번이면 화면 위의 버튼과 입력창으로 바뀌었다. 기자 업무에서 자료를 찾고 문장을 다듬을 때 체감한 효용과는 차원이 달랐다.

놀라움은 곧 두려움으로 번졌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에서도 AI의 도움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이 아니게 된다. 인간의 전문성이 희석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다.

10년 넘게 해온 기자 일이라고 다르지 않다. AI가 쓴 글을 뜯어볼 때면 여전히 “아직은 내가 낫네” 하고 안도한다. 그러나 그 안도감의 유효기간이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올해 봄, 이번 여름 AI가 내놓은 글들을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확연하다. 이러다 인간은 AI가 만든 결과에 책임만 떠안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불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시대가 왔다. 지인들과 만나면 “2050년쯤엔 로봇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주고받는데, 웃음 끝에 늘 묘한 침묵이 남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학습 민첩성, 생각 근육 등 그럴듯한 말은 많지만 정작 ‘내일부터 이걸 하라’고 자신 있게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지난 6개월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AI를 잘 쓴다’는 것은 AI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자기 일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떤 모델의 성능이 좋은지 아는 것보다 동료 기자들이 어디에서 시간을 뺏기고 무엇 때문에 지치는지를 아는 게 먼저였다. 문제를 정확히 알아야 AI에게 맡길 일도 정할 수 있다. AI는 빠르게 답을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까지 정해주지 않는다.

AI를 어떻게 쓰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AI가 내놓은 결과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다. 왜 이런 답이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무엇이 틀렸는지 가려내지 못한다면, AI는 판단을 돕는 도구를 넘어 판단력을 무디게 하는 습관이 된다. AI가 쓴 문장을 고치고, AI가 낸 답을 의심하고,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지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거센 물살 앞에서는 누구나 중심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감춘 채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니라, 겁이 나도 직접 써보고 틀리면 고치며 서로의 시행착오를 나누는 일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겠지만,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책임으로 남길지는 아직 우리가 정할 수 있다. AI 시대의 두려움은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함께 배우고 건너가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