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살기위해” “버려졌다”… 엇갈린 기억 [심층기획-경계에 선 아이들, 북한배경학생]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중> ‘북한’이란 꼬리표

치유 안 된 이별의 상처… 하나 된 가족은 행복하지 않았다

부모·자녀 엇갈린 기억

2024년 탈북 동기 실태조사 결과
가족 관련 이유 24%로 가장 많아

탈북 과정 가족간 분리 경험 45.7%
분리 기간 2년 이상 36.6%로 최다
분리 기간 중 불안감·외로움 커져

고생 끝 한국 정착해도 가정 불안
서로 헤어지기 이전 모습만 기억

현재와 분명한 괴리 보여줘 갈등
그래도 가장 힘 되는 사람은 가족
정책적 관심·지원 확대 목소리 커
“가족이 한국에 모이기만 하면 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고백은 부모에게 탈북은 더 나은 삶을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실천임을 보여준다. 본인은 물론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한 것이다. 탈북의 과정에서 생기는 가족과의 일시적 이별은 쓰라리지만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자녀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엄마가 먼저 (한국으로) 가서 버려졌다는 감정을 느꼈다.”

 

한 여성은 10대 때 경험한 탈북민 엄마와의 이별과 재회를 이렇게 떠올렸다. 삶의 버팀목이던 부모의 부재는 의도가 무엇이든 커다란 상실감으로 남는다. 자녀들에게 탈북은 본인의 의지가 아닐 수 있다. 부모의 결정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친척, 둘도 없이 좋았던 친구, 익숙한 동네와 헤어지고, 그것에 얽힌 즐겁고, 따뜻한 추억과 단절하는 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탈북과 얽히고설킨 그 과정을 부모는 ‘살기 위한’ 최선의 몸부림으로 기억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버려진 비참함, 익숙한 것과의 어쩔 수 없는 이별로 인식하고 갈등을 벌인다면 탈북민, 그 자녀인 북한배경학생에게 든든한 울타리여야 할 가정의 안정은 깨질 수밖에 없다. 2006년 탈북한 허옥희씨의 경험이 꼭 그랬다.

 

허씨는 북한을 탈출해 바로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 중국에서 3년을 지낸 뒤 2009년 입국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감행한 탈북의 끝은 아니었다. 북한에 두고 온 두 딸을 데려와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흩어진 가족을 하나로 모아야 했다.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데 1000만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허씨의 한달벌이는 약 120만원이었다. 딸들과 만나는 시간을 한시라도 앞당겨야 했다. 1000만원을 모을 때까지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남들이 걸으면 나는 뛰고, 뛰면 날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독하게 일하고, 아껴서 6개월 만에 700만원을 모았다.

 

어렵게 두 딸을 데려올 수 있는 돈을 만들었고, 2010년 겨울 어느 날 4년 만에 딸들과 재회했다. 헤어질 때만 해도 품에 폭 안길 정도로 작았던 둘째는 엄마만큼 자라 있었다. 딸들의 얼굴을 바라만 봤다고 한다. 이름조차 부를 수가 없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허씨를 덮쳤다.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북한에 있을 땐 두 딸은 엄마를 최고라고 여겼다.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면 뛰어서라도 쫓아왔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저녁 먹고 쉬라”며 설거지, 청소를 나눠 하던 사려 깊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딸들은 달라져 있었다. 엄마를 ‘집안일도 하고 돈도 벌어오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했다. 강아지처럼 엄마를 따르던 아이들은 “놀러 가자”고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데려왔는데….”

 

서운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생계를 책임지느라 아이들과 마주 앉을 시간조차 부족했다. 어쩌다 마주치는 시간엔 응어리진 마음이 부딪치며 다툼이 반복됐다.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억울했어요. ‘나 죽으면 너희 어떻게 되나 보자’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과의 관계가 삐걱대면서 내내 품었던 의문이었다. 대답은 다툼의 와중에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있었다. 둘째의 영어 성적이 너무 나빠 다그쳤더니 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가 날 그렇게 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그래서 엄마가 떠난 다음에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

 

◆엄마와 재회, “행복하지 않았다”

 

허씨가 두 딸과 재회하고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탈북에 대한 자녀의 시선과 입장은 이주현(22·가명)씨가 들려준 이야기에 보다 선명하다.

 

당 간부 집안에서 태어난 이씨는 북한에서 큰 어려움 없는 성장기를 보냈다. 공부도 곧잘 해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이씨의 삶은 2011년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크게 출렁였다. 혼자가 된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중국으로 떠났다. 9살 때였다.

 

엄마가 돌아올 걸 의심하지 않았다.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같이 살겠거니 했다. 친척들이 잘 돌봐줘 크게 어려운 것도 없었다. 엄마는 중국에서 간혹 안부를 전해왔다. 그러다 엄마가 한국에 있고, 자기를 데려가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14살 때였다.

 

북한에 남으면 친구들과 친척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익숙한 삶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엄마를 택했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고, 엄마를 한 번은 봐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2020년, 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났다. 8년여 만이었다.

 

익숙한 게 하나 없는 한국 생활이었지만 의사가 되겠다는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엄마의 믿음과 응원이 자신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엄마는 중국에서 건강을 크게 해쳐 긴 시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엄마의 보살핌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젠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구나’란 생각에 마음이 버거웠다. 또 탈북민인 엄마는 한국에서 이씨의 교육,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나 정보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꿈꿔 온 재회를 이루었으나 모녀는 서로에게 답답함만을 느꼈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싸웠다.

 

“정말 매일매일 다투면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엄마와 다시 만나는) 꿈을 이뤘는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탈북한 사람들이 정작 한국에 와서는 죽고 싶다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불화 있지만… 가장 큰 힘은 ‘가족’

 

탈북민에게 ‘가족’은 탈북의 가장 중요한 동기다.

 

남북하나재단 2024년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탈북 동기로 ‘가족(자녀 등)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을 주려고’(8.8%), ‘북한에 함께 있던 가족을 따라서’(8.2%), ‘먼저 탈북한 가족을 찾거나 함께 살기 위해’(7.9%)를 꼽았다. 가족을 이유로 한 세 응답을 합치면 24.9%로 ‘식량 부족(23.5%)’, ‘북한 체제의 감시·통제가 싫어서(20.5%)’,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13.7%)’를 웃돌아 가장 많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온 뒤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면 한국 정착을 위한 근간이라고 해도 좋을 가정이 불안해진다. 이는 허씨나 이씨의 사례처럼 탈북과정에서의 가족 간 장기 분리가 영향을 끼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헤어지기 이전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현재 상황과 괴리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북한배경학생 116명을 대상으로 한 세계일보 자체 조사에서 탈북 과정의 가족 간 분리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92명 중 42명(45.7%)이 “있다”고 답했다.

 

분리 기간은 2년 이상(36.6%)이 가장 많았고, 1년 이상∼2년 미만이 17.1%였다. 6개월 미만, 6개월∼1년 미만은 각각 29.3%, 17.1%로 집계됐다. 분리 경험의 영향(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응답자(16명)가 많지는 않았으나 “불안감이 생겼다”(6명), “외로움이 강해졌다”(5명), “감정조절·관계맺기가 어려워졌다”(4명)는 부정적인 것을 꼽는 대답이 다수였다.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으로 온 북한배경학생의 경우에 한 부모 가정이 많다는 점도 가정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다.

 

세계일보 조사에서 현재 동거 형태에 답한 112명 중 71명(63.4%)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 한 쪽과만 살고 있었다. 부모 모두와 함께 산다는 응답은 22명(19.6%)에 그쳤다.

 

2024년 성평등가족부 조사에서 확인된 우리나라 한부모가구 비율이 6.5%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큰 차이다. 한 부모 가정이 많다는 것은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 등을 이유로 북한배경학생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할 여지가 많음을 의미한다. 가정을 유지하는 자체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건 물론이다. 제3국 출생인 한 학생은 “초등학교 때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해 저희를 다른 집에 맡겼다. 그 집에서 밥을 안 먹고, 잠도 안 자니 엄마가 너무 속상해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을 ‘북한식’으로 다루는 부모들의 태도가 가정의 불안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한 북한배경학생은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만 한다”며 “북한 출신 부모님들이 이런 경향이 있다. 고집이 세다”고 말했다. 신윤정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 입장에서는 다른 부모들은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반응해주는 것 같은데 자기 부모는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며 “반대로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탈북을 통한) 자유를 줬고, 의식주를 제공하고 있으니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족은 역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세계일보 조사에서 “본인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복수응답)에 응답자 109명 중 91명(83.5%)이 ‘부모나 가족’을 꼽았다. 탈북민들의 가족관계 회복과 자녀 양육, 교육, 사회 적응 등을 도울 수 있는 정책적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씨가 두 딸과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한 시민단체가 운영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였다. 주말마다 2년 넘게 교육을 받았다.

 

허씨는 “(북한에서는) 아이를 이해하고 지지해줘야 한다는 걸 배워본 적이 없다”며 탈북민 가정에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부모 교육과 마음 치료”를 꼽았다.

 

이씨는 자신이 겪었던 탈북 과정에서의 분리 경험을 상기하며 자신이 겪은 갈등과 혼란은 북한배경학생들의 공통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관계뿐 아니라 언어, 문화까지 여러 겹의 적응 과제를 안고 있는 제3국 출생들이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현 명지대 교육미션센터 연구교수는 “탈북민들의 정착 과정에서 시기마다 나타나는 현실적 과제를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사회통합은 물론 미래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도 탈북민 가정을 어떻게 건강한 회복과 통합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