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고민하는 시기에 도리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이가 있다. 30년 동안 시간강사로서 강단을 지켜오다 최근 초빙교수로 임용된 정일영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 60대에 다가온 인생의 전환점
지난 1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예고편을 통해 정 교수의 드라마 같은 행보가 공개되면서 오랜 시간 묵묵히 버텨온 그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서 그는 “루저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지만, 결국 65세에 ‘유퀴즈’에 나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 교수는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해 파리 제8대학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인하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가 최근 초빙교수로 전환했다. 지난 8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초빙교수 임용 소식을 직접 전했다. 초빙교수는 한 분야에 전문 실력과 강의 역량을 겸비했거나 대학 홍보 효과가 기대되는 인사를 대상으로 하는 비정년 트랙 교원 제도 중 하나다. 정년이 65세로 제한된 일반 교수와 달리 재계약 여부에 따라 70세 이후까지도 연장 가능성이 있다. 본래 오는 8월까지 임기였던 정일영에게 이 소식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선물과도 같다.
이 모든 기적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빛이 보인 건 2024년, 그의 나이 63세 때였다.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 현지 촬영을 준비하던 유튜버 ‘침착맨’이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정 교수를 방송에 초청했다. 당시 침착맨을 전혀 몰랐던 그는 칭찬해주는 공익방송인 ‘칭찬맨’으로 오해한 채 촬영장을 찾았다고 한다. 강의를 꼼꼼히 준비했지만, 원고만 읽어서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그는 즉흥적으로 수업을 이끌었다. 솔직하고 유쾌한 그의 입담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현재 정그가 출연한 숏폼 영상의 누적 조회수는 2100만회를 넘어섰다.
이를 바탕으로 정 교수는 2025년 11월 프랑스인 댄서 카니의 유튜브 채널 콘텐츠 ‘카니를 찾아서’에 출연해 다시 한번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인연은 2026년 3월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의 프랑스 전통 햄인 ‘잠봉’을 활용한 신제품의 광고 촬영으로 이어졌다. 또한 지난달 10일에는 MBC ‘라디오스타’에 나오기도 했다.
◆ ‘시간강사’라는 30년의 세월
지금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 교수이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은 눈물겨운 암흑기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정 교수는 프랑스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그는 여느 해외파 박사들처럼 교수 임용을 목표로 삼았으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사학위 취득 전 은사들을 찾아가 자리를 조율하던 과거 학계의 관행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뒤늦게 그에게 남은 선택은 시간강사뿐이었다. 정 교수는 지난달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 “한번 시간강사로 시작하면 교수가 되기 쉽지 않다”며 30년에 달하는 세월을 견뎌야 했던 이유를 밝혔다.
시간강사 수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자 정 교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EBS 프랑스어 강의였다.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예정 어휘 500개를 모두 다루기 위해 밤마다 강의안을 작성하고 이른 아침 촬영장으로 향하는 고된 일상을 반복했다. 또한 EBS 강의를 희망하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수강생들의 이목을 끌고자 강의 중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파격적인 시도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교육계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은 프랑스어에 더해 이른바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대학들이 관련 내규를 바꾸면서 정 교수는 여러 학교에 출강하던 길이 막혔고 한 학교에서 두 강좌 이상 맡지 못하는 시수 제한까지 걸렸다. 그의 월수입은 학기 중 100만원, 방학에는 고작 20만원이 전부였다. 50~60대에 경제력을 잃은 가장의 삶은 외롭고 막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게 됐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 쳤다. 인세를 벌기 위해 주요 출판사 약 10곳에 끊임없이 원고를 보냈다. 수차례 출판을 거절당하면서도 집필을 이어간 결과 지금까지 4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 정일영을 버티게 한 단 한 사람, ‘어머니’
긴 암흑기 속에서 정 교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평소 ‘어머니보다는 1초라도 더 살아야 한다’를 지론으로 삼아온 만큼 그의 효심은 남달랐다. 그가 그토록 교수 임용을 바랐던 이유도 어머니에게 교수 연구실을 구경시켜 기쁨을 드리는 것이 평생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유튜브나 방송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는 배경 역시 어머니에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지독한 생활고를 이겨내고 65세에 마침내 역전극을 이뤄낸 그의 최종 목표는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어머니를 모실 마당 있는 작은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