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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농업 안보를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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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그동안 대형 인명 참사를 겪으며 재난 대응 체계를 강화해 왔다. 컨트롤타워를 정비하고, 매뉴얼을 보완하며, 현장 대응 역량을 높이는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말해 온 재난이 있다. 바로 식량 위기다. 식량 위기는 폭발음 없이 다가온다. 총성도, 연기도 없지만 한 번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면 국민의 밥상과 물가, 산업 전반을 흔드는 파장은 그 어떤 재난보다 크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여전히 20%대에 머문다. 쌀을 제외하면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은 대부분 해외에 의존한다. 평상시에는 글로벌 시장이 이를 메워 주지만 기후 위기, 전쟁, 수출 제한, 물류 차질이 겹치면 식량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전략 자산이 된다. 돈이 있어도 제때 사 오지 못하는 순간, 식량 위기는 국가 안보의 문제로 바뀐다.

이귀재 ㈔농업과미래 이사장
이귀재 ㈔농업과미래 이사장

최근 국가와 기업의 시선은 인공지능,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에 집중되고 있다. 천문학적 투자가 발표되고, 어느 지역에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지역의 희비도 엇갈린다. 이러한 미래산업 투자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 대도약의 축이 반도체와 데이터, 로봇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는 농업 또한 국가 전략의 한 축으로 세워야 한다. 서버가 멈추면 산업이 흔들리지만, 식량 공급망이 멈추면 국민의 하루가 흔들린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농업 안보는 낡은 구호가 아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종자 주권, 토양 건강, 물 관리, 비축 체계, 생산 기반 유지가 모두 안보의 언어가 된다. 냉해와 폭염, 가뭄과 침수에 동시에 견디는 복합 저항성 품종 개발은 더 이상 연구실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다. 종자 산업 육성 정책도 성과를 냉정히 평가하고, GMO와 Non-GMO 논쟁 역시 이념 대립을 넘어 과학적 검증과 전략 작물 확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동시에 농업은 첨단기술의 수혜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피지컬 AI와 로봇 기술은 제조업 공장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령화된 농촌의 노동 공백을 메우고, 병해충을 조기에 감지하며, 가뭄과 홍수를 예측하고, 작황과 수급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데 쓰여야 한다. 데이터센터의 전력이 미래산업의 피라면, 논과 밭의 물길은 국민 생명의 혈관이다.

토양과 물을 국가 인프라로 보는 시각 전환도 시급하다. 토양 유기물을 높이고 수분 저장 능력을 키우는 일은 가뭄과 홍수를 동시에 완충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어선이다. 스마트 관개, 저수지 현대화, 디지털 수급 예측, 품목별 회전 비축 체계는 농업 보조 사업이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의 핵심 장치가 되어야 한다.

재난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인명 참사에 대비하는 일이 국가의 책임이라면, 국민의 식탁을 지키는 일도 같은 무게의 책무다. 이제 식량 안보를 농업 정책의 좁은 틀에서 꺼내 국가 위기관리와 산업 대전환의 중심에 올려야 한다. 농업 안보가 튼튼해야 인공지능 시대의 번영도 오래간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할 보이지 않는 재난, 그것이 바로 식량 위기다.

 

이귀재 ㈔농업과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