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새로운 거처 마련에 고민이 깊었던 서울 유일의 시교육청 인가 북한배경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현대자동차 기부로 한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1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명학교는 현재 위치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염강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학교를 새로 짓는다. 부지 문제는 ‘기부채납’으로 해결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유인 폐교 부지에 여명학교가 교육시설을 신축한 뒤 시교육청에 기부해 해당 시설에 대한 장기간 사용 허가를 받는 방식이다.
기부채납은 민간이 비용을 들여 조성한 시설의 소유권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라 기부자는 해당 시설에 대해 최대 20년간 무상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염강초 폐교 부지에는 여명학교와 2030년 개원을 목표로 하는 서울유아교육진흥원이 함께 들어서게 된다.
문제 해결은 민간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통 큰 기부 덕에 가능했다. 현대차가 지원하는 60억원과 자체 교육시설 건립을 위해 수년간 모금해 마련한 여명학교 재원 100억원 등 총 160억원을 투입해 교육시설을 신축하고, 완공된 시설을 여명학교 명의로 시교육청에 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 서울시교육청, 여명학교 등은 1년 전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뜻을 모았다. 24일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식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2004년 설립된 여명학교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북한, 제3국, 국내 출생 등 북한배경청소년이 중·고등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대안학교다. 서울 봉천동 대로변 상가 건물에서 시작한 여명학교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2008년 서울 중구 남산 건물로 이전했다. 2010년엔 서울시교육청에서 정식 대안학교 인가도 받았다. 2019년 자체 학교 건물을 짓기 위해 은평구 부지 매입을 추진했지만, 북한이탈주민에 부정적 인식을 지닌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서울 밖으로 이전할 경우 서울시교육청 인가에 따른 정규 학력 인정이 취소돼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2023년 서울시교육청의 도움으로 염강초 폐교 부지에 대한 임시 사용 허가를 받아 지금까지 운영돼 왔다. 하지만 사용 기한이 2027년 2월까지여서 다른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관계기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통일부는 지난해 북한배경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시설이 지방자치단체 소유 부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매번 새로운 학교 부지를 찾아야 하는, 여명학교 같은 상황이 더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전 법령에서는 북한배경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소유 부지를 빌려 쓰는 것만 가능해 안정적인 교육시설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재원 조달뿐 아니라 지자체 소유 폐교 부지 활용이나 법 제도 개선 등 여러 과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도출된 해결 방안이라는 게 관계기관 측 설명이다.
2025년 4월 기준 전국 초·중·고교 등에 재학 중인 북한배경학생은 2915명이다. 이 중 국내 출생자는 1606명(55.1%), 제3국 출생은 1019명(35.0%), 북한 출생은 290명(9.9%)이다. 부모 중 한 명 이상은 탈북민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과반인 것이다. 이들은 가족해체 경험에 따른 심리적 문제, 한부모가정 등 취약한 가족환경, 언어,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등 학업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창현 명지대 교육미션센터 연구교수는 “북한배경청소년 대상 대안학교의 안정적 정착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부모와 학생 본인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탈북민인 보호자는 한국의 교육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녀의 일반학교 적응에 적절히 개입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