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치료 포기하고 죽으러 가는 곳?”…호스피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의사소통]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또 다른 치료’의 시작, 호스피스
통증 줄자 다시 웃기 시작한 환자
죽음대기소 아닌 잘 마무리하는 곳
세계일보 유튜브 코너 <의사소통>은 건강·질병 등 일상 속 의료 궁금증을 각 분야 전문의와 직접 소통하며 풀어가는 콘텐츠다. 친근한 명의가 출연해 독자와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질병 예방법과 건강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호스피스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아니에요?”

 

위암 말기 환자인 60대 A씨는 담당 의사로부터 더 이상 항암치료를 이어가기 어렵다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권유받았다. A씨와 그의 가족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모든 치료를 포기하라는 뜻인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뜻인가’라는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한동안 호스피스 이용을 미루다 통증이 심해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자 결국 호스피스 병동을 찾은 A씨. 처음에는 침울한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랐다. 의료진이 통증과 불편한 증상을 조절해주자 그는 조금씩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도 하나둘 맛볼 수 있었다.

 

A씨는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 컸다는 걸 오랜만에 느껴본다”며 “가끔 내가 말기 암 환자라는 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도 “호스피스에 더 일찍 왔더라면 그동안 못했던 걸 더 많이 함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호스피스는 흔히 ‘치료를 포기한 환자가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제 호스피스 치료의 목표는 죽음을 앞당기거나 죽음을 잠자코 기다리는 데 있지 않다.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워졌을 때 환자의 통증과 불편한 증상을 줄이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또 다른 형태의 치료다.

 

강희택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이지, 모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오히려 호스피스에 들어가는 순간 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암 자체를 없애는 데 집중했던 치료의 목표가 통증과 구토, 호흡곤란, 불안, 불면 등 환자를 괴롭히는 증상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병원 치료와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환자가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먹거나 가족과 여행을 가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도 치료의 일부가 된다.

 

일례로 폐암 말기 환자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가정하자. 이 욕구를 무조건 막아 수명을 며칠 더 연장하는 것과 환자의 바람을 존중하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강 교수는 “말기 암 환자에게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일주일 더 사는 것보다 담배를 피우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며 “환자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비의학적인 돌봄도 완화적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치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는 입원형뿐 아니라 가정형, 방문형 등 여러 형태로 운영된다. 입원형 호스피스라고 해서 반드시 병원에서 임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고 가족이 돌볼 준비가 돼 있다면 퇴원해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도록 돕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문제는 많은 환자가 호스피스를 너무 늦게 찾는다는 점이다.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고 휠체어나 보행 보조기구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을 때 호스피스 치료를 시작해야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거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호스피스에서는 통증을 완화하고,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치료가 시작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에서는 통증을 완화하고,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치료가 시작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항암치료를 끝까지 이어가거나 호스피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정을 미루다가 임종을 불과 며칠 앞두고 병동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호스피스에 들어가자마자 죽었다’는 오해가 생기기 쉬운 이유다.

 

강 교수는 “삶을 정리하려면 어느 정도의 기력이 있고 의식도 명료할 때 들어와야 한다”며 “항암치료를 마쳤지만 컨디션이 크게 나쁘지 않은 시점부터 완화의료를 함께 받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아버지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강 교수 아버지는 그가 담당하던 호스피스 병동에서 약 3주간 머문 뒤 세상을 떠났다. 의사이자 보호자로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한 경험은 그의 진료 철학을 바꿔놓았다.

 

강 교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환자와 가족에게 너무나 힘든 선택인데, 이전에는 서류를 빨리 작성해야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며 “보호자와 의사의 역할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많은 점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본 강 교수는 이 같은 교훈을 얻었다. 호스피스는 삶을 포기하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는 점, ‘얼마나 오래 사느냐’만큼이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동시에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호스피스는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함께할 수 있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