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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당하는 남편 출근길 같이 갑니다”…아직도 침묵 당하는 한·일 피해자들은 있다

한국 피해자 55.1%·일본 피해자 최대 51.7% “아무 조치 안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파워하라 방지법 실효성 논란 계속

최근 온라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일본인 남편을 위해 퇴사 전까지 출근길에 동행하고 점심을 먹는 한국인 아내의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이들은 남편이 계약종료 통보를 받은 뒤, 음침하고 교묘한 괴롭힘과 이른바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했다고 밝혔다. 괴로운 출근길이지만 곁을 지켜주는 아내 덕에 애써 웃으며 꿋꿋이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은 누리꾼들의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한 직장인이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아 괴로워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한 직장인이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아 괴로워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누리꾼들은 “저도 직장 내 괴롭힘 당했을 때 부모님이 출퇴근길을 배웅 나와주신 덕에 죽고 싶던 마음을 덮을 수 있었다”, “십몇년 전 일본 특유의 이지메를 당했는데 외할머니가 있어줘서 안 무너지고 버틸 수 있었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라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국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괴롭힘을 겪은 피해자 절반 이상은 신고 대신 침묵을 택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양국 모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으로 명문화했지만, 법망을 벗어나는 교묘한 괴롭힘 속 노동자들은 여전히 무력한 실정이다.

 

온라인에서 직장 내 괴롭힘 브이로그 등의 관련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유튜브 캡처
온라인에서 직장 내 괴롭힘 브이로그 등의 관련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유튜브 캡처

◆ ‘갑질’과 ‘이지메’…한국과 일본의 일터 현황

 

한국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괴롭힘을 뜻하는 영어 하라스먼트(Harassment)의 줄임말 ‘하라(ハラ)’를 붙인 신조어들이 범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위나 권력 등 우위를 바탕으로 고통을 주는 ‘파워하라’가 있으며 출산과 임신 등의 이유로 여성을 괴롭히는 ‘마타하라’, 직장 내 성희롱인 ‘세쿠하라’, 고객 갑질을 뜻하는 ‘카스하라’ 등이 있다. 최근에는 부하 직원을 지나치게 배려해 성장 기회를 제한하는 뜻의 ‘화이트하라’가 새롭게 등장했다.

 

2024년 5월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노동자가 근무지에서 경험한 괴롭힘 1위는 파워하라(19.3%)였으며, 카스하라(10.8%)와 세쿠하라(6.3%)가 뒤를 이었다. 이는 2020년 조사 결과(파워하라 31.4%, 카스하라 15%, 세쿠하라 10.2%)와 비교하면 다소 감소한 수치다. 구체적인 피해 내용(복수응답)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심한 폭언’이 48.5%로 가장 높았고, ‘업무상 명백히 불필요하거나 수행 불가능한 일의 강요·업무 방해’가 38.8%로 나타났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일부터 9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32.1%가 ‘최근 1년 사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모욕·명예훼손(17.8%), 부당 지시(16.4%), 폭행·폭언(16%), 업무 외 강요(15.4%), 따돌림·차별(14%) 순이었다.

 

◆ 사법 처벌하는 한국 vs 기업명 공표하는 일본

 

다만 국가 차원에서 괴롭힘 문제를 규제하고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에는 양국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은 2019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해 사법적 통제를 강화했다. 기업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사전 조치와 사후 대처를 미흡하게 처리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한다.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취한 사용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으며, 피해자는 가해자와 사용자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제도 도입 이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0년 5823건에서 2025년 1만6373건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처벌이 이뤄진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전체 신고 사건 중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1.4%(231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례는 0.6%(101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검찰로 넘어간 101건 중 27건(26.7%)은 기소유예로 종결돼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일본은 처벌 규정 대신 기업명을 공표하거나 민사상 노동분쟁의 해결을 돕는 방식을 채택했다. 일본은 2020년 대기업을 시작으로 2022년 4월부터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 ‘파워하라 방지법’을 의무화했다. 일본 정부는 기업에 상담 창구 마련 등 예방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어기거나 정부의 시정 권고를 따르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명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방식으로 징벌한다. 이는 단순한 벌금형보다 무서운 ‘최후의 보루’로 통하며, 지금까지 기업명이 공표된 사례는 아직 없다. 법 시행 후 과거 3년간 기업이 접수한 파워하라 상담은 2020년 48.2%에서 2024년 64.2%로 증가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사무실 밀집 지구를 걷는 직장인들. 연합뉴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사무실 밀집 지구를 걷는 직장인들. 연합뉴스

 

◆ 참거나 모르는 척… 피해자 침묵하게 하는 ‘무력감’

 

법령과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양국 모두 법률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은 유사하다.

 

후생노동성 조사에서 파워하라와 세쿠하라를 당한 노동자 중 각각 36.9%, 51.7%는 피해를 당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게 대처한 데는 “무슨 행동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무력감의 뒤편에는 괴롭힘을 법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가해자나 기업이 피해자에게 가한 부당한 인사 발령이나 전보 등에 대해 ‘경영상 불가피한 판단’이나 ‘공정한 성과 평가 결과’라고 주장하면 피해자가 괴롭힘에 따른 보복임을 입증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보호 대상이 고용된 노동자로 국한돼 프리랜서나 인턴 등 취약 계층은 법적 보호망 밖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장갑질119 조사 결과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 중 55.1%는 괴롭힘을 당해도 참거나 모르는 척 넘어갔다.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신고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49%)라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고, ‘인사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30.1%)가 뒤를 이었다.

 

가장 큰 맹점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규정이다. 법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사내 괴롭힘을 막아줄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다.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하청 노동자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워 법적 보호망 밖에 방치돼 있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 조사 권한과 의무’를 통째로 위임하는 법적 구조도 모순으로 꼽힌다. 가해자가 사장이나 사장의 친인척, 핵심 임원일 경우 사실상 편파 조사가 이뤄져 오히려 피해자가 따돌림 등 ‘2차 가해’의 표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장갑질119는 “괴롭힘이 수년째 줄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당국의 소극적 법 집행”이라며 “신고 후 발생하는 2차 피해 범위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를 엄격히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