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민초의 역사는 어디에 기록될까. 얼마 전에 올해 아흔두 살이 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원로 여성목회자 최도순(崔道淳) 씨의 자서전을 읽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신앙 고백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은 한 여성의 회고록을 넘어 해방과 전쟁, 가난과 산업화의 길목을 온몸으로 건너온 한국 현대사의 살아 있는 기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강원도 김화(金化)에서 태어났다. 해방을 맞았지만, 곧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숨 막히는 통제와 사상 검열이 일상이 된 북한 체제 아래 놓였고,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피란민이 되어 남으로 내려왔고, 굶주림과 가난 속에서 청춘을 보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러했듯, 그녀 역시 생존 자체가 가장 큰 과제였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던 1957년, 그녀는 통일원리를 만났다. 자서전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교리보다 삶이었다. 1960년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은 작은 칠판 하나와 전도지 몇 장을 들고 옛 김화의 일부가 편입된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생애 최대의 실적을 거두자’는 표어 하나를 품고서였다.
교회도, 생활비도 없던 시절이었다. 끼니는 맑은 물 위에 밥알 몇 개가 금붕어처럼 떠 있는 보리죽이 전부였다. 강원도 산골 개척지에서 만난 화전민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끼 옥수수밥으로 연명했고, 쌀밥은 초하루나 생일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어려웠다. 어느 노인은 “평생 쌀 한 말도 제대로 못 먹고 간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깨물 것도 없이 보리죽을 들이켜야 했던 배고픔 속에서 동생 같은 교우는 옥수수 대를 주워 먹으며 언니 생각이 났다며 미안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우리가 포기하면 후대 사람들의 길도 열리지 않는다”라며 같이 울었다. 그렇게 모인 교인들과 함께 벽돌을 나르고, 얼어붙은 흙을 이겨 철원교회를 세웠다. 갈라진 손가락 사이로 흙물이 아프게 스며들던 ‘통일사(史)’의 한 장면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무모한 청춘이었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의 개척길은 굶주림만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도 맞닿아 있었다. 강원도 전도길에서 그녀는 두 차례나 버스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번은 임신한 몸이었지만, 먼저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여러 생명을 구했고, 운전기사는 “여사님 덕분에 큰일을 막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장면도 잊히지 않는다. 80세 노모를 모시고 여섯 식구가 지하 단칸방에서 살다가 대학생 아들이 입대하자 등록금 부담이 줄어 가족은 큰 결심을 한다. “햇빛 보고 살고 싶다.” 그 소박한 소망으로 지상의 허름한 셋집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주소가 바뀌어 학교의 연락을 받지 못한 탓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제적생이 되어 있었다. 절망 끝에 그녀가 대통령에게 쓴 탄원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잘못이 있다면 학교에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가난이 죄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가난은 단순한 경제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운명이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이야기는 더욱 먹먹하다. 평생 생계를 책임지며 묵묵히 가정을 지켜 준 남편은 평소와 달리 말끔히 면도를 하고 집을 나선 그날, 철도 건널목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지금도 집 문패를 바꾸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 집 문패는 남편의 이름 ‘李俊衡(이준형)’이라고 그대로 달아 놓고, 집주인으로 받들어 함께하고 있다.” 저녁 무렵이면 거실 창문을 가볍게 “똑똑” 두드리며 퇴근하던 남편을 향한 수십 년의 애틋한 그리움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굶주림과 사회적 냉대, 가족의 희생 등 고난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한 번도 자신의 길을 버리지 않았다. 스승 문선명 선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다. 스승은 제자들의 어려움을 “독립투사가 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하늘나라를 찾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곧 삶의 방향이 되었고, 그래서 모든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헌신이었다면, 그녀에게 하늘나라를 찾는 일 역시 그에 버금가는 절박한 소명이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종교를 평가할 때 사건이나 논란만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한 공동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아흔두 살 노(老) 목회자의 자서전은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기 위해 헌신해 온 한 신앙공동체의 험난했던 과거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