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탈북민) 부모를 둔 북한배경학생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탈북민 중 이미 학교생활을 끝낸 이들이나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전문가 등의 평가는 어렵지 않게 접했지만, 현재 학교를 다니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건 쉽지 않았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미성년의 아이를 언론과 접촉하게 하는 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먼저 취재를 허락한 곳은 부산 장대현중고등학교였다. 서둘러 약속을 잡고 학교로 가던 중 학생들이 겪는 현실을 마주한 건 택시에서였다. 목적지가 영·호남에서 유일하게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탈북민 자녀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라고 하자 택시 기사는 “애들을 정규학교에 보내서 섞어 놓고 적응하게 해야지, 따로 두면 외딴 섬처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데 세금 쓰는 건 낭비 같다”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적응을 못하는 게 아이들 문제일까’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북한배경학생 문제를 다뤄 지난 13∼15일 게재한 세계일보 3회 시리즈 ‘경계에서 선 아이들, 북한배경학생’의 제목에 사용한 ‘경계’와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경계(境界)는 두 지역이나 공간, 개념을 나누는 선을 의미하지만 제도나 사회적 인식에도 있다. 북한배경학생 중 국내 출생(55.1%)·제3국 출생(35.0%) 비율이 북한 출생(9.9%) 비율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정책은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탓이 크다. 어색한 한국어 말투와 억양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에 따라 갈린다. 부모의 국적을 선택할 수도 없다. 약점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 건 정의롭지 않다.
혹자는 한국에 오기로 했으면 한국어 정도는 준비해서 와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 안 된’ 채로 온 중국 출생 탈북민 자녀에게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가. 똑같이 준비 안 된 채 한국에 와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인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또 다른 의미로 위험이나 이상 상황에 대비해 주의를 기울이거나 감시하는 경계(警戒)가 있다. 북한배경학생과의 만남은 이들이 신뢰할 만한 단체나 개인 등의 연결이 있어야 가능했다. 만나더라도 깊은 속얘기에 닿긴 쉽지 않았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내 진짜 이름,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들은 ‘말해도 안전할까’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듯했다. 한국 사회도 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조사를 보면 탈북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은 15.7%로 외국인 이민자·노동자(8.9%)보다 높다. 이는 북한배경학생 62.4%(남북하나재단, 2024 탈북청소년 실태조사)가 자신의 출신 배경을 밝히지 않는다는 결과와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만난 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진 않았단 사실이다. “배경 때문에 밀려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민기, “남북 어디에나 있는 약자를 지켜주고 싶다”며 경찰을 꿈꾸는 김송이씨, 남북한을 모두 경험했기에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주현씨가 그랬다.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등에 재학 중인 북한배경학생은 2915명이다. 이들은 이미 우리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약자가 되기 쉬운 소수는 다수가 먼저 경계심을 허물고 포용해야 한다. ‘평화 공존’의 숙제는 이미 교실에 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