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삼면이 바다인 실질적 해양국가다. 일찍이 미국의 해군 전략가 머핸(A T Mahan) 제독은 국가의 번영과 강대국 지위는 해양력(Sea Power)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해양력은 상선, 무역, 조선업과 해외기지, 항만 및 해양산업을 망라하는 종합 국력이다. 이는 해상교통로(SLOC)의 안전 확보와 강한 해군력을 유지하는 국가가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의 주축이 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경제적으로 원유 100% 수입, 수출입 물동량의 98%를 해상에 의존하는 통상국가 한국은 미국·이란의 전쟁이 야기한 호르무즈해협의 봉쇄와 역봉쇄를 보면서 해상수송로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안보적으로는 서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회색지대(Grey zone) 전술, 러시아의 극동함대 재무장과 북극항로 통제, 여기에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의 해군력 증강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서해 124도 선을 작전 관할 구역으로 주장하면서 군사훈련까지 하고 있다. 특히 항공모함의 우리 관할 해역 진입은 작년에만도 8회나 있었고,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서는 함재기 이착륙 훈련도 했다. 군함 진입 횟수도 연간 300회를 넘어섰고, 회색지대 전술과 함께 실질적으로 해군의 지휘를 받는 해상민병대(民兵隊)까지 동원해 서해 ‘내해화(內海化)’라는 해양전략을 실행하는 중이다.
이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서해를 내해처럼 관리함으로써 유사시 한·미 연합전력의 작전 여건을 흔들겠다는 반접근·지역 거부(A2/AD) 전략의 연장선이다. 특히 항모 3척 체제에서 2035년까지 6척 체제로, 055형 이지스급 순양함 10척에 핵추진항공모함 건조까지 병행하는 기술전과 속도전까지 병행하는 체계적인 전력 증강에 한창이다.
북한도 5000t급 구축함 ‘최현호’와 ‘강건호’를 잇달아 진수하면서 해군력 증강에 한창이다. 김정은은 2030년까지 매년 두 척씩, 총 12척 규모의 구축함 함대를 확보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여기에 핵추진잠수함 건조 같은 러시아 기술 이전 정황까지 겹치면서, 북한의 해군력 증강은 북·러 군사협력 심화와 해상 핵 억제력 과시라는 새로운 전략·전술로 진화하는 중이다.
특히 북한의 신형 구축함들은 함대함 교전용이 아니라 전술핵을 해상에서 발사하는 ‘이동식 핵 타격 플랫폼’으로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에는 중·러 군용기 10여대가 일본 정찰이라면서 동해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기도 했다. 만일 북·중·러 간에 두만강 출해권(出海權) 논의까지 이어지면 우리 해양 안보 환경은 더 악화할 것이 자명하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과 조우가 불가피하고, 질적으로 달라진 북한의 해상 핵 위협 현실화라는 두 흐름은 동시 진행형이다. 이 점에서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장보고-N’ 핵추진잠수함 개발 계획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하며 용두사미가 되면 안 된다. 통상과 자원 이동은 평시엔 자유롭지만, 위기 시 이를 지켜낼 수 있는 최종 보루는 역시 해군력이다. 한국형 항모 구축과 차기 구축함(KDDX) 사업과 더불어 무인수상정과 해저 감시망 등 비대칭 전력 구축이 병행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바다는 전 인류의 공공재이지만 힘의 공백 속에선 결코 지킬 수 없다. 이 점에서 해상수송로 보호나 해양 안보의 핵심은 실질 억제력 확보에 있다. 육상 미사일 감시에 집중돼 온 감시·정찰 자산을 해상으로 분산하는 자원 재배치는 물론, 미국·일본과의 해양 안보 협력을 통해 감시 자산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광역 감시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외교적으로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나 국제법에 근거한 ‘해상 행동 규칙’(CUES)과 ‘공중 조우 원칙’(GAME) 이행 요구 등 단호한 대응도 요구된다.
작금의 한국은 복합 해양 위협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질적 해양력 구축만이 국익 투사의 궁극적 기반이다. 이제 국가 생존 문제인 해양력 제고가 우리 안보의 새로운 축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