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남정훈 기자] 프로야구 KT의 외야수 최원준은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3순위로 KIA의 지명을 받았다. 수준급의 컨택과 빠른 주루 능력, 강견을 앞세운 수비 능력까지 갖춰 유망주로 각광을 받은 최원준은 2년차부터 준주전으로 올라서더니 이후부터는 주전급 선수로 도약했다.
그러나 생애 첫 FA 자격 획득을 앞둔 시즌이었던 지난해 KIA와 NC에서 뛰면서 타율 0.242 6홈런 44타점 26도루로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1997년생으로 이제 전성기 구간에 접어드는 나이지만, 애매한 성적으로 인해 가치가 많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최원준을 데려간 건 KT였다. 외야 자원을 필요로 했던 KT는 지난겨울 4년 최대 48억원의 조건에 최원준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 계약을 두고 ‘오버페이’가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주를 이뤘다. FA 최대어급 선수였던 박찬호(두산)-박해민(LG) 영입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KT의 ‘패닉 바이’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불과 반년 만에 그런 평가는 180도 뒤집어졌다. 최원준이 KBO리그를 ‘씹어먹는’ 리드오프로 각성했기 때문이다. 4년 최대 48억원이라는 계약이 초염가로 느껴질 정도로 최원준은 올 시즌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전반기 성적표는 타율 0.363(320타수 116안타) 7홈런 44타점 16도루. 타율과 최다안타 부문 1위에 OPS는 무려 0.950에 달했다. 그야말로 전반기 KT는 ‘최원준 위즈’라고 불려도 무방할정도의 맹활약이었다.
전반기의 활약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최원준은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후반기 시작을 알리는 4연전 첫 경기에서 홈런포 한 방을 터뜨렸다. 1-1로 맞선 2회 2사 1,3루 기회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최원준은 LG 선발 톨허스트의 시속 136.9km짜리 몸쪽 높은 코스의 커터를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훌쩍 넘겼다. 최원준의 홈런포에 힘입어 KT는 LG를 4-3으로 누르고 후반기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경기 뒤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만난 최원준에게 홈런 상황에 대해 묻자 “사실 좀 먹힌 타구라고 생각해서 넘어갈 줄은 몰랐어요. ‘잡히지만 마라’ 정도로 생각했는데 넘어갔네요”라면서 “제 홈런으로 팀이 승리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첫 타석에선 톨허스트에게 삼진을 당했던 최원준은 2회에 곧바로 돌아온 두 번째 타석에서 초구를 그대로 잡아당겨 홈런으로 연결했다. 그는 “톨허스트를 처음 상대하다 보니 첫 타석에선 어려움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첫 타석에서 상대하면서 여러 구종을 지켜봤기에 두 번째 타석에선 초구에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그게 잘 풀려서 홈런을 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홈런 비결을 설명했다.
유망주의 껍질을 좀처럼 깨지 못했던 지난 10년과 올 시즌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인드셋’이다. 최원준은 “예전엔 오늘처럼 첫 타석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으면 고민도 많아지고 걱정을 많이 하는 예민한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최대한 빨리 잊고 리셋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까 다음 타석, 내일 경기에 임하는 데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마인드셋을 바꾼 계기는 가족이다. 2023년 12월 결혼한 최원준은 8월 초에 딸이 태어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아내가 좀 많이 힘들어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달라져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조만간 딸이 태어나는데, 딸에게 야구장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 보니 생각하는 자세가 바뀐 것 같다”라고 답했다.
딸의 출산 예정일은 8월 4일이다. KT는 8월4일부터 광주 원정 3연전이 예정되어 있다. 최원준은 “아내가 옆에 있어달라고 해서 그날 기차를 타고 뒤에라도 나갈 수 있게 팀에다 얘기를 해보려고요. 월요일에 태어났으면 참 좋겠는데...그리고 만약 8월4일에 비가 와서 경기가 우천 취소된다면 경기에 대한 부담 없이 딸을 처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원준이 예민한 성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들이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기록을 전혀 챙겨보지 않는 것이다. 최원준은 “아예 안 봐요. 지금 그걸 들여다보고 있다한들 그 기록으로 시즌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라면서 “그래도 외야에 수비하러 나가거나 할 때나 타석에 들어갔을 때 전광판에 제 기록이 뜨니까 보긴 보는데, 그럴 때 빼고는 전혀 보지 않으려고 해요. 예전부터 언젠가는 지금의 기록을 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날이 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꿈을 꾸면서 야구를 해왔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KIA에서 뛸 땐 모자에 응원 문구 등을 써놓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하지 않는다. 최원준은 “모자에 아무리 써놓는다 한들 달라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굳이 모자에 써놓지 않아도 제가 되새기면 되니까. 성향을 바꾸려고 노력을 엄청하고 있어요. 타석에서 어처구니없는 타격을 했을 땐 LG의 오스틴 선수나 롯데의 레이예스 선수 영상을 한 번씩 봐요. 그 정도 타격의 달인같은 선수들도 터무니 없이 칠 때가 있더라고요. 저 정도 뛰어난 타자들도 저란 타구가 나오는데, 나라고 매번 완벽한 타구가 나와야 하나라며 위안을 받곤 하죠”라고 덧붙였다.
최원준에게 농담 섞인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이라도 지난 겨울 맺은 FA 계약서를 수정하고 싶지 않나?”
아쉬운 표정을 짓던 최원준은 “수정해주시면 너무 좋죠. 근데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그래도 단장님이 제 얼굴 보실 때마다 ‘고맙다’ 이 말을 해주시는 게 너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라면서 “제가 KT와 계약했을 때 말이 많았잖아요. 지난 시즌에 제가 못했으니까. 근데 이제 단장님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제가 야구장에서 증명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라고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