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7일, 제헌절이 18년 만에 공휴일로 돌아왔다. 2008년 주5일제 정착 과정에서 제외된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이 됐다. 그러나 제헌절의 상징적 복원과 달리 헌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한 개헌 논의는 여전히 정치적 대립 속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선언했다. 이 정신은 1948년 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뿌리가 됐다.
제헌국회가 7월 17일을 헌법 공포일로 정한 데에는 조선왕조 건국일과 날짜를 맞춰 역사적 연속성을 계승하려 했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왕조에서 민주공화국으로 국가 체제는 바뀌었지만, 새로운 국가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위에 새로운 헌정질서를 세운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이 정신은 제헌국회의 출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국회는 한반도 전체를 기준으로 한 300석 가운데 북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할 수 없게 되자 그 지역을 대표할 100석을 비워둔 채 개원했다. 남한만의 총선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합법 정부라는 헌법적 정통성과 평화통일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100석의 빈 의자’는 단순한 결원이 아니었다. 분단을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통일의 이상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대한민국 헌법의 약속이었다.
오늘날 남북관계는 사실상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냉각돼 있다. 그렇기에 100석의 빈 의자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분단을 영구적인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헌 세대의 문제의식을 오늘 우리는 얼마나 계승하고 있는가.
헌법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는 살아 있는 규범이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정치권의 대립 속에 개헌 논의가 번번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1987년 헌법은 권위주의를 끝내고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역사적 이정표였다. 하지만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과 극심한 진영 대립, 반복되는 국정 마비 등 여러 구조적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최근 반복된 대통령 탄핵과 국정 공백, 여야의 극한 대치와 입법·행정의 충돌은 현행 헌정체제가 국가 운영의 안정성과 미래지향성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개헌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되거나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권력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국민 모두의 사회계약이기 때문이다.
제헌절의 공휴일 복원은 단지 하루를 더 쉬자는 의미가 아니다. 헌법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최고 규범임을 다시 되새기고, 헌정의 미래를 성찰하는 국가적 계기여야 한다. 공휴일을 되찾은 것만으로 제헌의 정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 미래 세대의 가치와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새로운 헌정체제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마련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적대와 대결이 일상이 된 한반도 현실 속에서도 제헌국회가 끝내 내려놓지 않았던 평화통일의 이상과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78년 전 제헌국회가 남겨둔 100석의 빈 의자는 지금도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헌법을 박물관 속 유물처럼 기념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살아 있는 규범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가. 민주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임시정부의 이상과 제헌국회의 약속을 오늘의 현실에서 완성해 가는 일, 그것이 제헌절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자 우리 시대의 책무일 것이다.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