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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데이’ 국경일 지정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한국은 사실상 유엔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접수한 미국·소련(현 러시아) 양국은 새 정부 수립을 놓고 옥신각신 다퉜다. 소련과의 양자 협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고 여긴 미국은 이 사안을 유엔에 넘겼다. 하지만 소련과 소련군 점령 하의 북한은 유엔의 관여 및 개입을 일절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1948년 8월 이승만 박사를 초대 대통령을 하는 남한 단독 정부가 출범했다. 유엔은 회원국의 절대 다수인 48개국의 찬성을 근거로 한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의 우리 군 초소에서 유엔기과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연합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의 우리 군 초소에서 유엔기과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연합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졌다. 유엔은 스스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규정한 한국을 돕기로 했다. 회원국들에게 병력과 의료진을 한국에 보내 ‘침략자’ 북한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했다. 3년이 조금 넘는 전쟁 기간 동안 4만명 이상의 유엔군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2200명 넘는 전사자가 고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 묻혔다. 이는 유엔이 직접 관리하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묘지다. 오늘날 경기 평택에 주둔한 유엔군사령부 역시 유엔의 이름을 내건 유일무이한 군사 조직이다.

 

이승만정부는 1950년부터 매년 10월24일을 공휴일인 ‘국제연합일’(유엔데이)로 지정해 기렸다. 한국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 유엔이 1945년 10월24일 창립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유엔 회원국의 세력 판도에 변화가 생겨났다.

 

반미(反美)·반서방 성향의 신생 독립국들이 속속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북한은 인기가 올라간 반면 한국의 주가는 떨어졌다. 급기야 1976년 북한이 유엔은 아니지만 그 산하 기구의 정식 회원국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박정희정부는 유엔을 향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유엔데이를 공휴일에서 빼 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 미국 뉴욕 유엔 본부를 방문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 미국 뉴욕 유엔 본부를 방문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올해부터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을 계기로 옛 유엔데이 또한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주체는 그해 5월10일 총선거로 탄생한 제헌 국회였다. 이 제헌 국회의 개원은 ‘38선 이남 지역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해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하라’는 유엔 총회 결의에 따른 조치였다. 대한노인회, 광복회, 대한민국 헌정회 등이 바로 이 점을 들어 유엔데이의 국경일 지정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대한노인회장인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보존을 위해 헌신한 유엔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응답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