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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빚더미’ 경기도…‘선감학원 역사박물관’ 지을 수 있을까 [오상도의 경기유랑]

‘인권 유린’ 선감학원 옛터에 박물관 건립…여론조사에선 국민 75% 찬성
국가·경기도 ‘7억8000만원’ 공동 배상 판결 속 역사적 보존 움직임 탄력
1800㎡ 규모로 2028년 착공, 2029년 말 완공…미디어아트·기록관 등 조성
‘추미애호’ 용역·사업비 등 허리띠 졸라매…재정난에 사업 속도 조절 가능성
“1963년 어느 날, 역 앞에서 경찰관이 멱살을 잡았어요. 12살 때였는데 강제로 차에 탑승해 경기 안산 선감도에 도착했습니다. 인솔자들이 잡히는 대로 패더군요.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 임모씨)

 

현대사의 비극인 ‘선감학원 사건’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역사문화박물관 건립 사업에 국민 4명 중 3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부가 최근 피해자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동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비극의 현장을 인권 교육의 장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 역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선감학원은 과거 4000명 넘는 아동·청소년을 강제 수용해 가혹 행위와 강제노역을 일삼았던 수용시설이다.

 

1970년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경기도 제공
1970년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경기도 제공

◆국민 75% ‘선감학원 역사박물관’ 찬성…2029년 말 완공 목표

 

17일 경기도와 한국자치경제연구원이 국민 1001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3%가 ‘선감학원 역사문화박물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로 ‘피해자 추모 및 기억 공간’(37.7%), ‘사회적 치유 및 화해’(24.6%), ‘국가 차원의 진상 기록 및 보존’(13.8%) 등을 꼽았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기 안산 선감도에 설치된 부랑아 수용시설이다. 해방 이후 ‘관치’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까지 운영됐다.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던 이 시설은 해방 이후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2023년 선감학원 유해발굴 현장. 연합뉴스
2023년 선감학원 유해발굴 현장. 연합뉴스

당시 증언에 따르면 경찰이나 공무원이 아이들을 잡아 이른바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아동보호소에 넘기면 여러 경로를 거쳐 경기도가 운영하는 선감학원으로 이감됐다. 정부가 부랑아로 규정한 이들은 강제로 가족과 떨어졌다.

 

정부는 6·25전쟁 직후 치안 안정 등을 명분으로 8~18세 소년들을 강제 수용했는데, 이들은 외부와 격리된 채 임금 없는 농사와 누에치기 등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학대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선 휴일 없는 강제노역과 구타, 굶주림, 성폭력이 이어졌다.

 

생존자들의 구체적 증언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탈출하다 바다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은 인근 섬 주민에게 붙잡혀 다시 머슴살이를 했다. 13세에 끌려간 안모씨는 3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사라진 아들 걱정에 술로 연명하다 죽은 아버지 소식을 접했다. 오모씨는 일곱살에 붙잡혀 온 섬에서 종일 고된 노동과 구타에 시달렸다. 통나무를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 무릎을 꿇린 채 맞았다는 것이다.

 

1942년 선감학원이 있던 선감도에 도착한 아이들. 국가인권위원회·경기도 제공
1942년 선감학원이 있던 선감도에 도착한 아이들. 국가인권위원회·경기도 제공

어린 나이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가족과 고향을 되찾아도 상처를 곱씹으며 사회의 밑바닥을 떠돌았다. 다시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청송교도소에 수용된 사례도 있다.

 

숨죽여 지내던 소년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선감학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로 결론 내리며 정책을 시행한 국가와 운영 주체인 경기도가 공동으로 유족에 대한 공식사과와 유해발굴, 지원 대책 마련, 유적지 보호사업 등을 하도록 권고했다.

 

◆“국가·경기도, 배상 책임”…재정난이 끼칠 영향에 이목 쏠려

 

이 같은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최근 법원도 철퇴를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41단독 곽경평 부장판사는 8세의 나이로 끌려가 10년간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 A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와 경기도가 공동으로 2억86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가 선행 소송에서 확정받은 5억원을 포함하면 총 배상액은 7억8600만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선감학원 사건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기간 개입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유사 범죄의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경기도의 선감학원 사건 피해지원 종합계획(2023년 기준). 세계일보 DB
경기도의 선감학원 사건 피해지원 종합계획(2023년 기준). 세계일보 DB

앞서 경기도는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옛터 중심부에 1800㎡ 규모의 역사문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왔다. 내부에는 미디어아트존, 기록박물관, 아동인권도서관, 기억의 길이 들어선다.

 

도는 내년 실시계획 수립을 거쳐 2028년 착공한 뒤 오는 2029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선 민선 8기 때 마련된 계획안이다. 

 

현재로썬 7조원 누적적자에 허덕이는 경기도가 박물관 건립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올해 경기도 지방세(도세) 수입이 당초 예상보다 3500억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정난은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추미애 지사의 공약사업 예산 등을 고려하면 추가 세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는 민선 9기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도의 재정 위기를 강조하며 전면적 재정 점검에 나선 상태다. 각 공공기관에 운영비 등 업무추진비의 집행 자제를 요청하는 등 모든 예산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감학원 역사문화박물관 건립은 민선 8기에 추진된 사업으로, 속도 조절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