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주년 제헌절 날 대한민국 국회는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모독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22대 국회 후반기 출범 50일 가까이 되도록 정상적인 원(院) 구성조차 못 하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를 둘러싼 여야의 극심한 대결로 헌법 제40조에 규정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구절이 무색할 정도로 공전과 파행만 거듭하는 무법 국회, 파행 국회, 식물 국회로 전락했다. 내우외환의 국가 장래와 국민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의 뻔뻔한 행태가 기가 막힐 뿐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제헌절을 하루 앞두고 원 구성 협상에 나섰으나 결렬됐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원 구성 협상 불발에 항의해 18년 만에 법정 공휴일이 된 제헌절 행사에 끝내 불참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의 의미를 되새길 제헌절이 제1야당 대표 없이 반쪽 행사로 치러진 것이다. ‘국민주권, 헌법으로 열다’라는 올해 제헌절 주제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반발에도 18개 상임위원회 중 법제사법위원회 등 11개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는 폭주를 자행했다. 압도적 수(數)의 우세를 앞세워 대화와 타협이 핵심인 협치의 정신과 의회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오만한 독주는 비난받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 여당을 유인할 정치력이나 카드 하나 없이 버티기로만 일관하니 국민 동정도 얻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여야 모두 당권 쟁투의 진흙탕에 빠져드니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인 원 구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회 정상화를 내팽개친 여야의 한심한 작태에 국민의 입에선 한숨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회는 대화와 타협으로 상임위원장 배분도 해결 못 하는 한심한 수준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새로운 임기의 국회가 출범할 때마다 다툼이 반복되는 상임위원장 배분을 더는 여야 협상에 의존할 수 없다. 차제에 국회의장은 원내 제1 다수당, 법사위원장은 원내 제2 다수당 식으로 상임위원장의 배분 비율과 차지할 상임위원장 직을 공식처럼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나, 나눠 먹기를 위해서인지 국회법에 국회의장·부의장과 상임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규정했다. 2년마다 원 구성을 둘러싼 갈등에 피로도가 높다. 원 구성을 전·후반기로 나누지 말고 한 번만 하는 식으로 개선하기 바란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 배분의 법제화를 민주당이 수용하면 원 구성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 정 원내대표는 다음 23대 국회부터 제1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제2당이 다음 상임위원장을 선택하는 등 순차적으로 상임위원장을 고르는 제도를 법제화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이 받아들이면 이번에 법사위원장을 더는 요구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영구 집권, 영구 다수당의 몽상(夢想)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합리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법제화에 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