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 노동당의 앤디 버넘 하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새 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키어 스타머 총리의 후임 총리로 사실상 확정됐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어 대표 경선에 단독 출마한 버넘 의원을 공식 선출했으며, 그는 오는 20일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스타머 총리는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을 보고한 뒤, 국왕이 버넘 대표에게 정부 구성을 요청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에 따라 버넘 대표는 지난달 18일 보궐선거로 하원에 복귀한 지 한 달 만에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하는 ‘초고속’ 정치 행보를 이어가게 됐다.
56세의 버넘 대표는 당내 온건 좌파로 분류되며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1980년대 이후 정치 권력은 중앙집권화되고 경제 권력은 민영화됐다”며 “모든 지역에서 성장을 촉진하고 지역사회에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이어 “부끄럽지 않은 노동당, 사람과 지역을 중심에 둔 정치”를 강조하며 경제 개혁, 공공 통제 확대, 재산업화, 권한의 지방 이양 등을 골자로 한 ‘선명한 노동당’ 노선을 제시했다.
이는 중도 실용주의를 내세운 스타머 체제에서 노동당이 고유한 색채를 잃었다는 당내 좌파 진영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버넘 대표는 보다 분명한 정책 방향과 지역 기반 정치로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버넘 체제 출범으로 영국의 정책 방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중앙정부 중심의 권한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확대하는 ‘분권형 국가 모델’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주택, 교통, 교육, 공공 인프라 등 생활 밀착형 정책의 결정권을 지역에 넘겨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성장 전략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민영화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고, 쇠퇴한 산업 기반을 재건하는 ‘재산업화’ 정책도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특히 잉글랜드 북부 등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 기능 일부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버넘 대표가 제안한 ‘북부 총리실(No.10 North)’ 구상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넘 대표는 17년간 하원의원을 지내며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문화부·보건부 장관과 재무부 수석 부장관, 내무부·보건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2017년 중앙 정치를 떠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 선출된 이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코로나19 대응에서 성과를 내며 3선에 성공했고,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지역 중심 발전 모델인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창하며 영국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버넘 대표의 총리 취임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중앙집권적 구조에서 지역 분권과 균형 발전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정치적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런던 중심 국가’에서 ‘지역이 살아나는 국가’로 변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