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국가’ 선언이 중남미 외교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대남 적대 노선을 강화하려고 내놓은 선언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북한 우방국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의 외교 활동 반경을 넓혀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4년 2월 성사된 한·쿠바 수교다. 쿠바는 북한과 형제국으로 불릴 만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다. 한국과 수교할 경우 북한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쿠바 정부에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었다. 실제로 수교 교섭 과정에서도 쿠바 측은 북한의 반발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을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외교적 환경이 달라졌다. 쿠바로서는 한국과의 수교를 북한의 대남 정책과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외교관계 수립으로 설명할 여지가 커졌다. 북한이 남북의 민족적 연계를 부정하면서 전통적 우방국들이 한국과 관계를 맺을 명분을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북한은 한·쿠바 수교 직후 마철수 주쿠바 대사를 소환하고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출신 한수철을 후임 대사로 보내 관계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쿠바는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한 데 이어 최근에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민간 부문 확대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서는 등 실용주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남미 우방도 달라졌다
미국이 서반구 영향력 회복에 나선 점도 북한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남미를 포함한 서반구를 전략적 최우선 지역으로 제시했다. 중남미에서 친미 우파 세력의 집권이 이어지는 이른바 ‘블루타이드’까지 맞물리면서 북한이 반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축해온 외교망도 흔들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한 뒤 베네수엘라는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광업 분야의 규제를 손질하고 미국 기업의 투자 재개를 추진하는 한편, 약 1700억달러에 달하는 디폴트 채무를 재조정하기 위해 미국계 글로벌 로펌 호건 로벨스를 법률 자문사로 선임했다. 반미 연대의 핵심이던 베네수엘라가 국제금융시장 복귀를 위해 미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응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리승길 주베네수엘라 북한대사가 2023년 11월 이임한 뒤 후임자를 보내지 못해 대사대리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정권 교체와 대미 관계 개선이 맞물리면서 북한이 현지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쿠바·베네수엘라와 더불어 중남미 ‘반미 3국’으로 분류되는 니카라과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니카라과는 2023년 대사관을 상호 재개설하기로 합의했고, 니카라과는 이듬해 주한 대사관을 전격 폐쇄했다. 당초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이 주북 대사로 내정됐지만, 북한과의 협의가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아 파견이 무산됐다. 결국 외교 경험이 없는 마나과 시의원 출신 마누엘 모데스토 뭉기아 마르티네스가 주북 대사에 임명됐다. 애초 부임을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었던 만큼 계획이 어그러진 뒤 급하게 선택된 인사였던 셈이다. 현재 주북 니카라과대사관은 마르티네스 대사가 혼자 근무하는 1인 공관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한·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FTA에 가린 북·브라질 대사 파견
북한이 공을 들이는 브라질과 멕시코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브라질에서는 송세일 전 외무성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 국장이 지난 4월 신임장을 제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브라질도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리카르두 프리무 포르투갈을 신임 주북 대사로 내정했다. 하지만 브라질 외교의 관심은 북한보다 한국과의 한·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FTA 재추진 등 경제협력에 쏠려 있다.
브라질은 지난 2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신임 주한 대사로 외무부 통상정책국장 출신인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지 아제베두 피멘텔을 임명한 것도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중시하는 기류를 보여준다. 북한이 대사급 교류를 복원하더라도 투자와 통상에서 한국과 경쟁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멕시코에서도 북한의 활동은 제한적이다. 2020년 부임한 송순룡 대사의 공개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주멕시코 북한대사관은 현지 외교가에서도 사실상 존재감이 미미한 공관으로 꼽힌다. 멕시코는 북미 공급망의 핵심 생산기지로, 한국 기업의 현지 투자와 생산 규모를 고려하면 멕시코가 북한과의 관계를 확대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크지 않다.
북한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다극 세계’ 건설을 내세우며 중남미를 비롯한 글로벌사우스 외교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반미 이념보다 투자와 통상, 미국 시장 접근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2023년 김정은의 ‘두 국가’ 선언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까지 낮춰줬다. 대남 적대 노선을 굳히기 위해 꺼낸 ‘두 국가’ 선언이 오히려 전통적 우방국의 실리외교를 부추기며 북한 외교의 입지를 좁히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