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네사 패트릭/이주만 옮김/ 상상스퀘어/2만1000원
금요일 저녁 여섯 시. 퇴근하려던 당신을 팀장이 불러 세운다. “이것만 좀 보고 가지.”
약속이 있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네, 알겠습니다”였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다. “너만 할 수 있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부탁도 선뜻 받아들인다.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 같고, 괜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된다.
휴스턴대학교 교수인 바네사 패트릭도 다르지 않았다. 스물네 번째 생일, 그는 상사의 부탁으로 팩스 한장을 보내기 위해 늦은 밤까지 빈 사무실을 지켰다. 결국 자신의 생일 파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남의 부탁을 먼저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놓친 경험은 저자에게도 오래 남은 기억이었다.
이처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은 직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싫다’는 말을 하기 힘들게 만드는 장면이 숨어 있다.
경기장 전광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자 관중이 일제히 환호한다. 수만 명의 시선이 쏠린 그 순간, 과연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는 경기장 프러포즈가 하나의 상품이 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내면서까지 많은 사람이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공개된 자리에서는 상대가 거절하기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경기장 프러포즈 순간(Stadium Proposal Moment)’이라고 부른다. 규모는 다르지만 우리는 매일 이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런 일은 너밖에 못 해.”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다들 하는데 너만 빠질 거야?” 이런 말들은 상대의 선의를 자극하는 동시에 거절을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와 연결해 설명한다. 사람들은 실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절을 더욱 부담스러워한다. 부탁을 거절하면 모두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10년 넘게 ‘주도적 거절(Proactive Refusal)’을 연구한 저자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운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핑계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근거로 거절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 없어서요”라고 말하는 대신 “저는 금요일 저녁은 가족과 보내기로 정해두었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번만은 어렵습니다”보다 “저는 원래 업무 시간 외에는 새로운 일을 맡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단호하면서도 상대의 감정을 덜 상하게 한다. 거절의 이유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삶의 원칙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A.R.T.’라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자기 인식(Awareness)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야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둘째는 규칙(Rules)이다. 상황이 생길 때마다 고민하기보다 미리 정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주말에는 휴식을 위해 새로운 업무를 맡지 않는다”처럼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두면 거절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가 된다.
셋째는 자기다움(Totality of Self)이다. 같은 말이라도 표정과 시선, 말투와 자세에 따라 전달력은 달라진다.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가 일치할 때 거절은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거절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한다. 모든 부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국 지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과 일에는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못한다. 건강한 관계 역시 자신의 경계를 존중할 때 비로소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책은 거절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타인의 기대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알려준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거절은 상대를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기술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부탁에 “좋아요”라고 답하기보다, 자신의 시간과 가치, 삶의 원칙을 지킬 때 오히려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