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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의역사산책] ‘어린이의 벗’ 방정환과 만년샤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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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속박 속에서 어린이들의 희망·꿈 역설
민족 의식 고취·아동 인권 존중 정신 새겨야

1931년 7월25일 다수의 신문이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이 23일 33세를 일기로 별세했음을 보도했다. 5월1일 어린이날 행사를 성대하게 마쳤던 그가 지병인 고혈압과 신장염의 악화에 과로가 겹치면서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때 어느 신문은 그를 ‘소년문학의 선구’라 상찬하였고 어느 신문은 ‘소년소녀의 친우’라 불렀다.

필자가 소파를 떠올리면 먼저 다가오는 단어는 어린이날이 아니라 그의 동화 ‘만년샤쓰’이다. 물론 여느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필자도 어린이날이 봄·가을 소풍 말고 유일하게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자 수업을 거르고 학교 운동회를 여는 날이어서 이날을 무척 기다렸다. 그러나 평소에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운동회보다는 그의 ‘만년샤쓰’를 읽는 게 행복했다. 특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동화책을 접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는 담임교사가 반 학생들로부터 동화책을 모아 학급문고를 조성한 뒤, 많은 학생이 동화책을 돌려가면서 읽도록 하였을 때 천군만마를 얻는 기쁨이었다. ‘칠칠단의 비밀’도 이때 읽지 않았을까.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만년샤쓰’의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소년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만년샤쓰’의 뜻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만년필’, ‘만년설’을 떠올리니 그 뜻이 애매모호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였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속옷을 입을 수 없었던 주인공이 자기의 맨몸을, 오래 입어도 결코 너덜너덜해지지 않는 ‘만년샤쓰’라 불렀던 것이다. 나아가 이에 대한 체조 선생님의 격려 말씀은 어떠한가. “제군이 다 한창남 군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로 만나야 하고 배움의 의미를 이토록 절절하게 호소한 동화가 있었던가. 나아가 방정환은 주인공의 이름을 ‘창남’이라 정해 1922년 도쿄~오사카 간 왕복 우편비행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을 떠올리게 했다. 방정환은 필시 ‘창남’을 불러내어 지금은 가난하고 외세에 속박되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으며 자신의 온전한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미래의 희망을 소년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방정환은 1923년에 제정된 ‘어린이선언문’에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역설했다. 이에 어떤 이는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이 일본 유학 시절 그곳의 어린이운동에 영향을 받았음을 주장하면서 그가 펼쳤던 어린이운동의 독창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잎만 보고 뿌리를 보지 않는 단견이다. 당시 일본의 어린이운동이 예술과 아동 보호에 주안을 둔 반면에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은 민족의식의 고취와 함께 어린이의 인권에 있었다. 나아가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은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천도교인 방정환이 이런 사상을 이어받음이 당연하였다.

6월 중순 제자들과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들러 문일평, 한용운, 이중섭 등의 묘소를 탐방하는 가운데 방정환의 묘소를 찾았다. ‘동심여선(童心如仙)’, ‘동무들이’라는 글귀가 어찌나 마음에 와닿았는지 그 여운이 오래갈 듯하다. 독자들도 답답하거나 덧없음을 느낄 때 이곳을 들러 다양한 인생사를 경청하며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기를 빈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