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말이 없다. 대신 흔적이 말한다. 게중 엉뚱한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길을 붙잡는다. 왜 이것이 여기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 오래 바라보고, 쥐어 보고, 냄새도 맡아 본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내력을 아는 사람을 찾아 묻고 듣는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 속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있다.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을 줍는다. 거기, 그것이 있었다. <편집자 주>
비가 내리자 평화시장이 비닐을 입었다. 매대 위 옷가지도, 수레에 실린 짐도, 골목의 공용 전화기도, 세워 둔 오토바이 안장도 비닐 한 겹씩을 걸쳤다. 서울 1962년 문을 연 시장이다. 60년 넘게 일해 온 골목에서 상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라는 듯 비닐을 덮었다. 이들에게 비닐은 비 오는 날 걸치는 한 겹 외투였다.
점포마다 매대를 덮을 만큼의 비닐이 있다. 우비 차림의 오토바이 기사들은 큰 비닐을 싣고 다니다 적재물 위에 덮고 빗속을 달렸다. 음식을 나르는 식당 직원들은 랩으로 밀봉한 쟁반을 머리에 이고 빗길을 걸었다.
시장에서 일하는 김(71)씨는 “비 오는 날에는 한 번 일할 거를 두세 번 일하게 되니까 힘들다”며 “꺼내 놨던 물건을 비 맞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하고, 그치면 다시 꺼내 놔야 하고, 비가 올락 말락 하는 날에는 진이 다 빠진다”고 말했다.
공용 전화기의 비닐은 비 오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덮어 둔다고 했다. 오래 쓴 전화기가 젖을까 하는 우려였다.
전화기에 비닐을 덮어 둔 하(78)씨는 “점포마다 비닐을 많이 챙겨 두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안다”며 “떨어질 즈음이면 생필품 사듯이 쟁여 둔다”고 말했다.
비가 그치면 비닐은 걷힌다. 걷힌 자리에 물건이 다시 나온다. 비닐은 접혀 매대 아래로 들어간다. 퀘퀘묵은 냄새를 쌓으며 다음 비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