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선진시장 뚫고 신흥국 공략… ‘교민금융’ 넘어 세계로 통했다 [심층기획-글로벌 영토 넓히는 K-금융]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6회> ‘K금융 2.0’ 너머로 <끝>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 입증
은행·보험·증권사 공격적인 해외 진출
현지 우량기업 인수·초대형 IB 딜 주도
美선 마스가 프로젝트 등 지원 외연 확장
싱가포르 거점 아세안 시장 공략 큰그림

동남아선 ‘관계형 금융’ 중시
폐쇄적인 시장 환경 탓 현지화 전략 중시
베트남 재래시장 발로 뛰며 예수금 유치
인도선 거대 플랫폼·밀착대면 영업 결합
‘외국계 무덤’에서 신뢰 쌓아 로컬과 승부

해외로 뻗어나간 한국 금융사들, 이른바 ‘K금융’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시장의 주류로 비상하고 있다. 과거 해외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이나 교민들의 자금 융통을 돕던 역할에서, 어느덧 현지 우량 기업을 직접 발굴하고 초대형 글로벌 투자은행(IB) 딜을 주도하는 역할로 진화했다. 정부 간 경제협력 국면, 과감한 인수합병(M&A)과 첨단 기술을 무기 삼아 선진 자본시장의 핵심부를 공략하는 한편 오랜 기간 다진 ‘관계형 금융’으로 신흥국의 현지 대형사들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취재진이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9일까지 미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금융사들을 방문해 포착한 장면들.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과 첨단 기술의 활용,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 등이 뒷받침된 결과, 금융 선진국과 신흥 시장을 넘나들며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K금융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부 종합
세계일보 취재진이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9일까지 미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금융사들을 방문해 포착한 장면들.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과 첨단 기술의 활용,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 등이 뒷받침된 결과, 금융 선진국과 신흥 시장을 넘나들며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K금융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부 종합

◆수치로 드러나는 존재감… 전 업권서 두각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금융의 영토 확장은 업권을 가리지 않고 고루 나타나며, 실적으로 증명된다. 은행업권은 2025년 41개국 211개 해외점포에서 전년 대비 2.3% 증가한 16억51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총 자산은 2331억3000만달러(약 334조5000억원)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증권과 보험업권도 해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6개 국내 증권사의 2025년 해외 현지법인 당기순이익은 4억5580만달러(약 6540억원)로 전년 대비 67.8% 급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1억9730만달러)과 비교하면 매년 성장세가 상당하다. 미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한 실적 성장, 인도 등 신규 지역 진출 다변화가 주효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15개 진출국 중 13개국에서 이익을 냈다. 지난 5년 동안 해외점포 수는 70개에서 93개로 늘어났다.

12개 보험사의 46개 해외점포 역시 전년 대비 23.8% 늘어난 1억9700만달러(약 280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했다. 보험업계는 증권사·현지 은행 인수 등 다른 업권으로의 확장과 공격적인 신규 점포 편입에 힘입어 해외 자산 규모를 전년 대비 121.2% 늘어난 162억4000만달러(약 23조3000억원)로 불렸다.

◆선진 시장 중심부로 한 걸음 더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금융 선진국인 미국과 아시아 금융 허브 싱가포르에서 K금융이 ‘1부 리그’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3500억달러 대미투자 패키지를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미 경제협력 기회를 발판 삼아 한국 금융사들이 ‘금융 인프라’로서 입지를 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은행들은 최근 초대형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공동 주선 기관으로 거래를 주도하고(KB국민은행),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 프로젝트’의 거점인 필리조선소 인수에 자금 지원(하나은행USA) 등을 하며 긍정적인 출발을 알렸다.

미국에서 만난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기업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사가 미국 진출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한국계 은행들이 이들의 성공적인 안착을 돕는 든든한 금융 인프라를 자처하고 있다”며 “이를 미 전역으로 외연을 확장할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은행 업권에서도 미국 현지 특화보험사 인수(DB손해보험), 상장지수펀드(ETF) 전문 운용사 인수 및 독자적인 인공지능(AI) 역량으로 월가 본토 자본을 한국 증시로 이끄는 새로운 길(미래에셋자산운용)을 개척하고 있다. 금융, AI 분야에서 전 세계 선두를 달리는 미국에서 AI 리서치 플랫폼을 통한 월가 공략(미래에셋 웰스스폿)에 나선 사례도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에서는 다음 K금융의 먹거리로 지목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의 싱가포르 점포 총 자산은 183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5.1% 증가했다.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도 1억38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4.4% 성장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시중은행들은 한국계 유일한 현지 이체망 가입으로 IB 이너서클에 진입하고(하나은행), 무역 금융의 강점을 살려 아시아지역본부를 신설해 IB 인력을 대폭 확충했다(우리은행). 이곳에서 만난 한국 금융권 관계자는 “현지의 폐쇄적인 금융 환경 탓에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한창 성장하는 시장임에도 한국계 은행이 많이 진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계 은행들이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고 적극적으로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각도로 공략하는 신흥 시장

외국계 금융사의 무덤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소매 시장에서는 한국 특유의 끈끈한 관계 맺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은 과거 한국 기업에 의존하던 여신 구조를 완전히 탈피했다. 외국계 은행 1위로 도약해 전체 대출 자산 65%를 현지 거래로 채우고, 재래시장을 발로 뛰어 예수금 현지화에 나서는(신한베트남은행) 한편, 두터운 신뢰 영업을 통해 현지 우량 로컬 자산을 대거 편입하며 소매금융 자산 비중을 절반 가까이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베트남우리은행).

14억 인구의 인도 자본시장에서는 거대 플랫폼과 밀착 대면 영업을 결합한 입체적 공략이 한창이다. 디지털 애플리케이션 역량과 현지 대형 증권사 인수에 따른 전통 고액 자산가(HNI) 대면 공략을 병행하는 자산관리 모델을 안착시키는 식이다(미래에셋증권). 소수 정예 인력으로도 현지 대기업 재무 책임자를 직접 찾아가 밀착 소통하며 독자적인 대기업 금융을 성사시키기도 한다(하나은행).

인도네시아에서는 과거 인수한 현지 은행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깐깐한 내부통제로 시장 신뢰를 얻은 증권업 등을 통해 종합 지주사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KB금융그룹).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곳 소매 시장은 그 나라의 법률, 관습, 세밀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접근해야 해 외국계 은행이 침투하기 쉽지 않다”며 “지분 투자를 통한 간접 진출과 수익원 다변화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 금융사들처럼 직접 현지 시장에서 기반을 일궈 성공시킨 경우는 의미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