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 스페인의 16년 만의 월드컵 우승 트로피 탈환으로 막 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스페인의 우승에는 수비 시 포백 앞에서 상대 공격 1차 저지선으로, 공격 시에는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한 ‘마에스트로’ 로드리(30·맨체스터 시티)가 일등공신이었다. 골이나 도움은 물론 유효 슈팅도 하나 없었던 로드리이지만, 월드컵 최우수선수(MVP)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하며 축구는 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스페인은 20일 미국 뉴저지주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2010 남아공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 월드컵 8경기에서 7승1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단 1점만을 내주는 질식 수비를 뽐낸 스페인은 A매치 38경기 연속 무패(29승 9무)라는 대기록과 함께 월드컵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결승전 뒤 열린 시상식에서 골든볼 수상자로 호명된 건 득점왕인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10골 4도움)도, 아르헨티나의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8골 4도움)도 아닌 로드리였다. 2024년 맨체스터 시티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과 스페인의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 우승을 이끌며 최고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동도르를 수상했던 로드리는 이로써 월드컵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발롱도르와 골든볼 수상을 모두 경험한 역대 11번째 선수가 됐다.
스페인의 우승 원동력인 질식 수비는 물론 상대를 압도하는 공수 밸런스의 중심에는 로드리가 있었다. 화려한 개인기나 득점보다는 그라운드 전체를 지배하는 게 로드리의 특기다. 스페인의 에이스인 라민 야말(바르셀로나)이 기대에 못 미치는 폭발력을 보여줬음에도 스페인이 토너먼트에서 축구 강국들을 연거푸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로드리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포백 바로 앞에 위치하는 로드리는 수비 시에는 포백을 보호하며 1차 저지선 역할을 해냈고, 공격에서는 빌드업의 시발점으로 공격의 템포와 방향을 모두 결정했다.
결승전에서도 로드리가 이끄는 스페인의 후방은 견고했다. 아르헨티나는 전후반 90분 동안 유효 슈팅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로드리는 연장 후반 교체될 때까지 99개의 패스를 시도해 93개를 정확하게 연결했다. 무려 93.9%의 패스 성공률로 스페인 중원을 이끈 로드리는 이번 월드컵을 통틀어도 참가 선수 중 가장 많은 747개의 패스를 성공시켰다. 대회 전체 패스 성공률도 93%에 달했다.
팀에서 궂은일을 도맡기 때문에 꼭 필요한 포지션이지만, 골이나 도움과는 거리가 멀어 조명받기 힘든 수비형 미드필더이기에 로드리의 골든볼 수상은 의미가 깊다. 골든볼은 공격수 혹은 공격 성향이 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전유물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올리버 칸(골키퍼), 2018 러시아의 루카 모드리치(미드필더), 그리고 이번 로드리만이 예외다.
힘과 기술, 패싱력, 탈압박 능력과 때로는 골을 터뜨릴 수 있는 클러치 능력까지 갖춰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 로드리 개인에게도 이번 수상은 인간 승리나 다름없다. 2024년 9월 오른쪽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쓰러져 시즌 아웃당했던 로드리는 8개월간의 재활 끝에 그라운드에 돌아와 역대 최고 수비형 미드필드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로드리의 활약 덕분에 유로 2024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연거푸 집어삼킨 스페인의 전성시대는 향후 몇 년간 계속될 전망이다. 1996년생인 로드리가 여전히 전성기 구간을 달리고 있는 데다 2007년생 동갑내기 듀오인 야말과 파우 쿠바르시(바르셀로나)가 공수의 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새 전성시대를 연 루이스 데라 푸엔테 감독은 “정말 감격스럽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선수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며 “우리 선수들은 스포츠 전체에 모범이 되는 세대다. 함께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