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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끝났다’던 알파고 쇼크…이세돌 이후 10년, 신진서 290수가 쓴 ‘인간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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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9단, 21일 카타고와 최종 3국…인간의 가능성 다시 시험대
알파고 이후 카타고까지 진화한 AI…10년 만에 다시 열린 인간의 가능성
AI와 싸운 10년 아닌 공존을 배운 10년…생각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2016년 3월, 전 세계의 시선이 향한 바둑판 위에서 인간 지능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영역이 흔들렸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사고와 직관이 쌓여온 바둑에서 기계가 인간 최고수를 상대로 우위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세계 정상급 기사 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다섯 차례 대국 끝에 1승4패를 기록했다. 4국에서 나온 ‘78수’는 인간의 창의성이 만들어낸 ‘신의 한 수’로 남았지만, 전체 승부의 흐름은 결국 AI의 승리로 끝났다.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당시 알파고가 남긴 충격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관과 창의의 세계마저 AI가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알파고 쇼크’는 그렇게 인공지능 시대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AI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했고, 바둑판 위에는 알파고 이후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카타고(KataGo)’다. 인간 프로기사들이 연구 도구로 활용하는 동시에, 여전히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최강급 바둑 AI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카타고는 여전히 인간이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카타고가 2점 접바둑에서도 인간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AI를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 벽을 향해 다시 도전장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었다.

 

신진서는 지난 19일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카타고를 상대로 290수 혈투 끝에 4집 반승을 거뒀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신진서는 2점을 먼저 놓고 시작하는 접바둑에서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 바둑 AI를 상대로 인간 프로기사가 실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대국은 충분한 의미를 남겼다.

 

2016년 이세돌의 78수가 인간 창의성의 상징으로 남았다면, 2026년 신진서의 290수는 AI 시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한 판이었다.

 

신진서의 승리는 인간이 AI를 정복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인간이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자신의 능력을 확장해 왔는지를 보여준 결과였다.

 

◆ 알파고 이후 10년…AI는 진화했고 인간은 적응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10년 동안 바둑계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AI를 넘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세돌은 최근 구글 딥마인드 10주년 기고문에서 알파고를 “미래를 먼저 보여준 가이드”라고 표현했다.

 

그가 바라본 AI는 인간이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새로운 도구였다.

 

함께 무대에 오른 이창호 국수 역시 “AI가 제시하는 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수가 나왔는지를 고민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명확하다.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은 정답을 찾는 속도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선택을 할지를 결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바둑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보와 경험의 축적이 강한 기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AI가 제시하는 수를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됐다.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카타고(KataGo)와의 두 점 접바둑 3번기 첫 대국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카타고(KataGo)와의 두 점 접바둑 3번기 첫 대국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카타고(KataGo)와의 두 점 접바둑 3번기 첫 대국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1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카타고(KataGo)와의 두 점 접바둑 3번기 첫 대국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1

◆ 인간은 AI를 이기는 대신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신진서의 이번 승리는 한 프로기사의 승리를 넘어, 알파고 이후 10년 동안 인간이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파고를 인간의 패배로 기억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며 “바둑은 AI 충격을 가장 먼저 받았고 가장 먼저 적응하며 공존의 문법을 만든 분야”라고 평가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과거에는 바둑의 기보 연구나 상급자와의 대국 경험이 실력 향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AI와의 대국을 통해 훨씬 넓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인간이 바둑에서 사고하고 탐구할 수 있는 지평 역시 크게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서강대 가상융합전문대학원 교수는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다음은 두려움이었지만 결국 활용 단계로 넘어왔다”며 “AI와 경쟁하기보다 AI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신진서는 21일 열리는 카타고와의 최종 3국에서 다시 한 번 인간 바둑의 가능성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