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매일 밟고 지나가는 맨홀 뚜껑은 대부분 동그란 모양에 오돌토돌한 무늬가 있다. 너무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가기 쉽지만, 맨홀 뚜껑의 형태에는 수학과 안전, 도시 설계의 원리가 숨어 있다. 표면의 무늬 역시 생명을 지키고 도시의 정체성까지 담아내기 위한 장치다. 맨홀 뚜껑에 담긴 비밀을 들여다본다.
◆ 수학과 안전이 담긴 둥근 맨홀 뚜껑
맨홀(manhole)은 상하수도관이나 전선망 등 도시의 지하시설을 점검·청소·수리하기 위해 사람이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연결 통로다. 영어 단어 그대로 ‘사람이 드나드는 구멍’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빗물을 배수하는 우수관 맨홀, 생활하수와 오염수를 처리하는 오수관 맨홀, 통신·광케이블을 관리하는 통신 맨홀, 전력 케이블을 보호하는 전력 맨홀, 도시가스 등 가스관을 점검하는 가스 맨홀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용도와 역할은 저마다 다르지만, 맨홀 뚜껑이 하나같이 동그란 데는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원은 어느 방향으로 길이를 재도 그 폭이 같은 정폭도형이다. 반면 다각형은 한 변의 길이보다 대각선이 더 길어 뚜껑이 비스듬히 돌아가면 자칫 구멍 속으로 빠질 수 있다. 무거운 맨홀 뚜껑이 떨어지면 지하 작업자가 다칠 수 있고 보행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안전 강화를 위해 맨홀 뚜껑 내부에 추락방지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다각형 구조는 위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모서리 부분에 집중돼 쉽게 깨지거나 균열이 생길 수 있지만, 원형은 전 방향으로 균일하게 분산시켜 상대적으로 견고하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승용차·대형 트럭 등 각종 차량이 오가는 도로에서는 원형 구조가 유리하다.
◆ 뢸로다각형의 한계와 사각형 맨홀의 쓰임새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폭이 항상 일정한 정폭도형의 성질을 가진 다각형인 ‘뢸로다각형(Reuleaux polygon)’을 맨홀 뚜껑에 적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공성과 유지관리, 경제적 측면에서 제약이 따른다. 뢸로다각형은 꼭지점이 있어 방향을 고려해 개폐해야 하지만, 원형은 방향에 구애받지 않는다. 또한 이동시킬 때 원형을 굴려서 운반하는 방법이 더 수월하다. 뢸로다각형은 제작 과정도 복잡해질 수 있어 원형보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모든 맨홀 뚜껑이 원형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해외에 뢸로삼각형을 쓰는 사례가 일부 있기도 하고 현장에서는 설치 위치나 시설 목적에 따라 사각형 맨홀 뚜껑을 사용하기도 한다. 맨홀 뚜껑 제조업체 ‘한국주조’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사각형 맨홀 뚜껑은 전기·통신 점검용이나 건축물 내부 시설 등 특정 환경에서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내부 공간이나 작업 면적 확보가 필요한 곳에서도 사각형 맨홀 뚜껑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맨홀 뚜껑 무늬에 숨겨진 비밀
맨홀 뚜껑의 형태뿐만 아니라 표면에 새겨진 무늬에도 이유가 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맨홀 뚜껑의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가장 큰 목적은 미끄럼 방지다. 맨홀 뚜껑은 내구성이 뛰어난 주철로 주로 제작되지만, 철은 비에 젖으면 표면이 미끄러워지는 특성이 있다. 만약 표면이 무늬 없이 매끄럽다면 빗길을 달리는 차량의 타이어가 미끄러지거나 보행자가 넘어질 수 있다. 표면에 새겨진 돌출 무늬는 마찰력을 높여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돕는다.
맨홀 뚜껑에 있는 무늬는 지하 시설물을 구분하는 ‘식별표’ 역할을 겸한다. 뚜껑 표면에는 각 지자체나 관리 기관의 로고를 비롯해 용도를 나타내는 문자가 함께 새겨진다. 이 덕분에 현장 작업자는 번거롭게 무거운 뚜껑을 열어 내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도 지상에서 하부 시설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맨홀 뚜껑의 무늬는 지자체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홍보 수단이기도 하다. 일부 도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 대표 명소를 담은 맨홀 뚜껑을 설치해 도시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은 지역 상징이나 헬로키티, 원피스, 포켓몬스터 등 인기 캐릭터를 맨홀 뚜껑에 그렸다. 포켓몬스터와 일본 지자체는 서로 협력해 일본 전역의 맨홀에 다양한 포켓몬을 새기는 ‘포케후타(Pokémon Local Acts)’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요코하마시에는 지역 상징과 피카츄가 담긴 맨홀을 설치해 관광 자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는 2015년 인사동길을 맨홀 디자인 시범거리로 지정하고 공모전을 거쳐 선정한 ‘매듭 문양 맨홀 뚜껑’을 설치했다. 과거 관인방과 대사동이라는 두 동네가 합쳐져 생긴 인사동의 역사와 현재는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장소라는 의미를 전통 공예인 매듭으로 형상화했다. 통영시는 한산대첩 승전지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살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형태를 본뜬 맨홀 뚜껑을 도입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