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한가운데가 눈에 띄게 휘어 이른바 ‘등 굽은 아파트’로 불렸던 울산 방어진 국민아파트가 결국 철거된다.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은 지 2년여 만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붕괴 위험에 놓인 노후 공동주택을 직접 매입해 철거하는 것으로,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난이 아닌 구조적 노후화만으로 주민 이주부터 건물 매입, 철거까지 공공이 맡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울산 동구는 방어진 국민아파트 보상을 위한 기본조사서 작성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5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6세대가 모두 이주를 마치면서 보상 절차도 본궤도에 올랐다.
동구는 용역이 마무리되는 다음 달 보상계획을 공고한 뒤 감정평가를 거쳐 협의 보상에 나설 예정이다. 이후 해체계획 수립과 안전성 검토, 해체업체 선정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철거 공사를 시작한다.
1984년 3월 준공된 방어진 국민아파트는 지상 5층, 50세대 규모다. 2023년 실시된 정밀안전진단에서 사용을 즉시 중지하고 개축 또는 철거가 필요한 최하위 E등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안전진단에서는 구조물 부식이 상당 부분 진행돼 시간이 지날수록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동구가 건물 기울기를 측정한 결과 남향 기준 276㎜ 기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중앙부가 육안으로도 휘어 보여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등 굽은 아파트’로 불렸다.
문제는 주민 이주였다. 붕괴 위험에도 경제적 형편 등이 여의치 않아 이사를 미루는 주민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동구는 주민설명회를 열어 위험성을 알리고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지정과 행정명령 등 안전조치를 이어갔지만 이주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동구는 2023년 12월 재난관리기금을 투입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력해 주민들이 입주할 임대주택을 확보하고 이사 비용을 지원했다. 임대보증금도 무이자 융자 방식으로 마련했다. 재난관리기금은 통상 태풍·지진·산불 등 자연재난의 예방과 복구에 사용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은 안전 확보를 위한 주민 이주 비용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난관리기금 지원이 시작되면서 주민 이주도 탄력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6세대가 지난 5월 모두 이주를 마치면서 50세대 전원이 아파트를 떠났다. 이에 따라 보상과 철거 절차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철거가 끝난 부지에는 주민 커뮤니티시설인 ‘방어진 마루’와 마을쉼터, 공영주차장 등이 들어선다. 동구는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의 신규 도시재생 노후주거지 정비 지원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철거와 정비 등에 투입할 사업비 132억원을 확보했다. 오는 2029년까지 주민 생활 기반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동구 관계자는 “보상 절차를 차질 없이 마무리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철거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사업이 완료되면 주민들의 정주환경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