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외교를 선도하는 두 핵심국인 프랑스와 영국에서 최근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오랫동안 ‘다크호스’에 불과했던 극우가 정치권 주류로 완전히 진입했다는 신호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앤디 버넘 총리의 취임은 영국에서 극우의 위상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Reform UK)을 견제할 카드로 버넘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영국개혁당은 키어 스타머 내각이 고전하는 사이 북부 공업지대 노동자 계층의 표심을 파고들며 여론조사 1위 자리를 굳혔고, 결국 맨체스터 시장으로 장기간 재직하며 노동자들을 대변해 ‘북부의 왕’으로까지 불린 버넘이 노동당 정부를 구원할 새 총리로 선택되기에 이르렀다. 차기 총리를 정하는 기준으로 “누가 극우 돌풍을 막아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게 작용한 셈이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이미 30%대 중반의 압도적 지지율로 오랜 기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유지해 왔다. RN의 대표 정치인인 마린 르펜도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독일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르펜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 단정하지 말라며 “최악의 상황만 예측하지 말고 프랑스 국민을 믿어 달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두 장면은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럽 양대 축인 프랑스와 영국에서조차 극우가 언제든 집권이 가능한 세력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제 이들의 집권은 ‘설마’라는 단서를 붙이기 어려운 ‘언제든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됐다.
◆주류화 성공한 프랑스·영국 극우
프랑스에서 RN이 정당 지지율 1위 자리를 차지한 여론조사는 더 이상 놀라운 ‘사건’조차 아니다. RN은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 강행에 따른 대규모 반대 시위와 인플레이션 경제 위기가 맞물린 2023년 가을 지지율 1위로 치고 올라온 뒤 몇 년째 30%대 중반의 안정적인 지지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내년 대선 유력 후보군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르피가로와 엘세이(LCI)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IFOP에 의뢰해 7월7∼8일 양일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르펜은 지지율 36%로 2위인 중도보수 진영의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19%)를 여유 있게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르펜은 지난해 3월 공금횡령 사건 관련 소송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 5년형을 받았으나 지난 7일 항소법원에서 형이 줄어들며 가까스로 출마 길이 열렸고, 곧바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다만, 동일 여론조사기관이 지난달 조르당 바르델라 RN 당대표를 대선후보로 넣어 조사했을 때도 지지율 37%로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여론조사 1위 성적표가 사법 리스크 해소와 극적인 대선 출마 선언의 이벤트 효과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는 극우를 뺀 보수, 중도, 진보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만을 기대하는 실정이다. 프랑스는 이미 앞선 총선 등에서 RN의 집권을 막기 위한 이 같은 자발적인 투표 결집인 이른바 ‘공화주의 방파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앞선 발언도 이런 결집을 유도한 발언이다.
영국에서는 영국개혁당이 지난해 초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당과 보수당 등 굳건한 양당 체제를 누르고 지지율 1위에 올라섰다. 이 흐름은 집권 노동당이 정부 리더십 교체를 공식화한 뒤 이루어진 최근 여론조사에서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타임스와 스카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7월19∼20일 실시한 정당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영국개혁당은 23%로 보수당(21%), 노동당(20%)을 모두 앞섰다. 오랫동안 당의 간판인 나이절 패라지 대표의 개인적 인기로 유지되는 정당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완전히 영국 정치의 주류 정당으로 올라섰다.
영국개혁당은 지난 5월 치러진 잉글랜드 136개 지방의회 선거에서 선거 대상 의석의 29%에 해당하는 1453석을 차지하며 지지율을 실제 정치적 성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29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서 기존 양당구도가 흔들리고 3당 체제로 영국 정치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제는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다.
◆철저한 대중정당화… 한계 지적도
유럽에서는 이미 2000년대 이후 각국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대거 세력을 불려왔고,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는 정권을 창출하거나 원내 제1당으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다만, 프랑스와 영국 극우의 성공은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강한 지역주의와 반이민 정서에 기반한 외부 세력 혐오가 극우 정치세력의 기반인 타 국가들과 달리 프랑스와 영국의 극우는 철저한 대중정당화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와 영국의 극우는 적극적인 이미지 개선을 최우선의 정치적 전략으로 채택했다.
RN은 르펜이 무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아버지이자 ‘프랑스 극우의 개척자’로 불리는 장마리 르펜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이른바 ‘탈악마화’ 전략이다. 이 일환으로 2018년 당의 공식 명칭을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으로 변경했고, 논란이 된 인물들을 당에서 배제하며 반유대주의적·동성애 혐오 발언을 통제했다. 심지어 에너지 부가가치세 대폭 인하, 고속도로 국유화 등 기존 극우 정당과는 색깔이 다른, 생활밀착형 정책도 적극 도입했다. 진보진영의 서민 의제를 적극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다만, RN의 서민정책은 보편적인 복지를 전제로 하는 좌파 정당과 달리 정책의 수혜 대상을 프랑스 국적자와 장기거주자 등으로 한정하는 배타적 분리 전략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극우 정당의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RN은 반이민 정책에서도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이민자 문화가 오히려 배타적임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의제를 전환했는데, 다문화 공존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극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개혁당도 2018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를 계기로 창당한 뒤 지속적으로 대중정당화를 추진해 왔다. 자신들을 ‘상식정치 세력’으로 재포장하며 적극적인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임금인상, 에너지 요금 인하, 무상의료(NHS) 대기시간 단축, 소득세 면세 기준 상향 등 서민·중산층을 겨냥한 생활밀착형 공약도 전면에 내세웠다. RN과 정확히 동일한 문법이다. 그러나 영국개혁당도 역시 복지정책 등에서 철저한 자국민 우선, 이민자 배제 등을 주장해 극우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영국 극우 정당의 대중정당화를 극우의 위험성 해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비록 표면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RN은 여전히 프랑스인의 정체성과 ‘프랑스다움’을 강조하고 이민자들을 배제하는 기본 이념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국민을 우선하고 이민자들을 배제하는 극우 정당의 서민정책은 이미 완전한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이들 국가에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이브 카뮈 급진정치관측소 공동소장은 “프랑스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등 계몽주의의 법과 유산을 수용하고 준수한다면 누구라도 프랑스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프랑스인이라는 것은 민족적 정체성이 아닌 가치관”이라면서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RN의 배타적 성향 서민정책을 직격했다.
가장 큰 의구심은 과연 이들이 실제로 나라를 운영할 역량을 가진 세력인가에 대한 것이다. 극우 정당들이 그동안 견지해온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실제로 운용 가능한 정책적 비전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현재도 수없이 제기되는 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5월 지방선거 승리 이후 영국개혁당의 성패가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영국개혁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상당수의 지방정부를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영국개혁당은 EU와 기존 양당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만으로 영국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지만, 이제는 지방세, 쓰레기 수거, 도로보수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에도 대응해야 하게 됐다”면서 이들이 거대한 시험대에 올라왔다고 진단했다. 이 시험대에서 극우 정당들이 통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낼 경우 지지층 결집을 위해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적 공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지금보다 더 급진화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