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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 찍어도 불안한 노후”…7년 벌고 50년 버티는 프로선수의 비극 [권준영의 머니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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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선수 생활 7.8년…30년 직장인과 다른 ‘짧고 강한 소득 구조’
3억원 연봉도 7년이면 21억원…50년 생애로 환산하면 월 350만원
은퇴 선수 48.3% 월소득 200만원 미만…전성기 소득 관리가 은퇴 이후 결정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선수들의 전성기는 짧다.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을 누비는 시간보다 은퇴 이후 살아가야 할 시간이 훨씬 길다. 연봉표에 찍힌 숫자가 커 보여도 짧은 선수 생활 동안 벌어들인 소득을 남은 인생과 연결하지 못하면 경제적 안정은 보장되지 않는다.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연봉 3억원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 A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7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세전 21억원을 벌었다면 현역 시절만 놓고 보면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30세에 은퇴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경제적 계산은 달라진다.

 

이 돈을 은퇴 이후 50년의 생애 소득으로 환산하면 연평균 4200만원, 월평균 350만원 수준이다. 물론 실제 생활에서는 세금과 소비, 가족 부양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고려해야 한다. 현역 시절 높은 소득이 은퇴 이후까지 자동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프로선수의 경제학은 ‘얼마를 버느냐’보다 ‘몇 년 동안 벌 수 있느냐’에서 시작된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프로종목 선수들의 평균 현역 생활 기간은 7.8년이다.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프로배구 등 주요 종목 선수들은 20대 초반부터 소득을 올리기 시작하지만, 부상과 경쟁 탈락, 기량 저하 앞에서 30대 초반이면 새로운 생애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일반 직장인이 2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 30년 넘게 소득을 이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프로선수의 소득 구조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프로선수는 평균 7~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벌어들인 소득으로 이후 수십 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30세에 은퇴한 선수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선수 생활 이후 남은 시간은 50년이다. 평균 현역 기간 7.8년과 비교하면 은퇴 이후 삶은 현역 기간보다 약 6.4배 길다.

 

문제는 일부 스타 선수의 고액 연봉이 프로스포츠 전체의 현실을 가린다는 점이다. 프로선수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소득 격차는 크다. 프로야구만 봐도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가 있는 반면, KBO 리그 최저 연봉인 3000만원 수준에서 경쟁하는 선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조차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 생활 후반부로 갈수록 출전 기회와 계약 규모는 줄어들고, 상당수 선수는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새로운 직업과 마주해야 한다.

 

짧은 선수 경력이 끝난 뒤 가장 큰 난관은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이동이다. 대한체육회 선수경력개발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퇴 선수의 미취업 경험 비율은 조사 연도별로 35.4~41.9%를 기록했다. 평균 7.8년의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지만 은퇴 선수 10명 가운데 약 4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셈이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한체육회 선수경력개발센터 조사에 따르면 은퇴 선수의 48.3%는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이었다. 70% 이상은 월 300만원 미만 소득 구간에 머물렀다.

 

현역 시절 높은 소득을 경험했던 선수라도 은퇴 이후에는 전혀 다른 경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단순 비교로 연봉 1억원을 받던 선수가 은퇴 후 월 200만원(연 2400만원)의 소득을 얻는다면 연간 소득 차이는 7600만원에 달한다. 선수 시절 높아진 생활 수준을 은퇴 이후 소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격차다.

 

프로선수의 은퇴 준비는 은퇴 직전이 아니라 현역 시절부터 시작돼야 한다. 핵심은 전성기 동안 발생한 소득을 어떻게 관리하고, 새로운 경력으로 연결하느냐다. 선수 시절 경기력 관리가 승리를 좌우했다면 은퇴 이후에는 자산 관리와 생애 설계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미국 프로스포츠는 선수 생애 관리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프로풋볼선수협회(NFLPA)는 신인 선수 단계부터 재무관리, 세금, 투자, 은퇴 설계 등을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프로농구선수협회(NBPA)도 선수들의 재정 관리와 경력 전환을 지원한다. 선수 생활은 짧지만 은퇴 이후 삶은 길다는 프로선수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경기력 향상만큼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본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는 프로야구·축구·농구·배구 등을 포함한 7개 프로단체, 69개 프로구단을 대상으로 은퇴 선수 생애경력 재설계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진로 상담과 직무 교육, 취업 지원, 창업 교육 등을 통해 선수들의 제2의 출발을 돕는다. 대한체육회 역시 선수경력개발센터를 통해 은퇴 선수 대상 진로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존재와 활용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대한체육회 조사에서는 은퇴 선수의 60% 이상이 선수경력개발 지원사업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도 선수들이 현역 시절부터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역 시절 선수들이 은퇴 이후를 준비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위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이런 가운데 체육인들의 ‘은퇴 절벽’을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망 마련도 시작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체육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체육인 공제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개정안에는 공제사업 전담 조직 설치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가 절차를 명시하고, 책임준비금과 이익금 적립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체육인들이 현역 시절부터 부상과 은퇴 이후의 경제적 위험에 대비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임 의원은 “체육인들이 국민에게 선사하는 감동에 비해 그들이 처한 현실은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없는 불모지와 같았다”면서 “이번 법안 통과는 체육인들이 더 이상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선진국형 복지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