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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두려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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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무인도에 간 ‘자칭 발명가’
새들 쫓아버리려 토끼 풀어놔
먹이 사라진 섬, 불행한 일 생겨
지나친 통제의 부메랑 잊지 말길

엘비라 나바로 ‘토끼들의 섬’(‘토끼들의 섬’에 수록, 엄지영 옮김, 비채)

스페인 작가 엘비라 나바로의 ‘토끼들의 섬’은 이 년 전 가을에 처음 읽었다. 그 후로 몇 번이나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소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두려운 느낌에 사로잡히게 돼서였다. 왜 그럴까, 왜 명확하게 소설이 정리되지 않는 걸까? “유럽 사회가 당면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걸작”이며 “카프카와 보르헤스의 문학적 성취”를 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2021년에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후보에 오른 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책을 잘 보이는 데 두고 내내 그 질문을 하며 지냈다. 실마리는 최근에 전혀 다른 책을 읽다가 발견했다.

조경란 소설가
조경란 소설가

그 책의 작가는 말했다. “당신이 통제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소설은 합리적인 것이 된다”라고, “소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도록” 두라고 말이다. 그 순간 그야말로 정수리를 한 대 깨끗하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통제’라는 단어 때문에. 그 단어에서 개인적인 나를 본 동시에 수수께끼만 같던 ‘토끼들의 섬’의 화자와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편치고도 분량이 짧은 이 소설의 화자는 삼인칭 ‘그’. 이름도 모르고 독자가 아는 정보는 그가 강 인근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집에서 혼자 살며 자신을 발명가라 여기고 한때 무인도를 여행하겠다는 꿈을 가졌다는 정도.

발명가는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인데, 그는 이미 존재하는 발명품을 자신에게 맞도록 개조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발견하고 조립하는 일을. 그 즐거움은 “산 정상에 도달할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했는데, 그 스스로 개인의 성취감이란 왜 그렇게 이상한 느낌인지 궁금해지긴 했다. 공예학교에서 하는 강의에선 아무런 성취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통나무배를, 짖을 때 앞다리를 움직이고 눈에서 빛을 쏘는 장난감 강아지들 같은 설치물을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통나무배를 타고 과달키비르 강으로 나갔다. 예전의 꿈이 떠올랐고 도시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억지로 그를 중심부로 끌고 들어가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날 결심했다. 섬에서 살기로.

섬은 과달키비르 강기슭에서도 가장 가깝지만 수풀이 우거져서 외진 장소였다. 자신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건 좋았어도 섬의 벌레들과 새, 그 무수히 많은 새 떼의 울음소리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웠다. 이 단편에 통제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한데도 지금부터 그가 계획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은 그와 흡사해 보인다. 새들이 자고 번식하고 죽기 위해 찾아오는 섬에서 새들을 쫓아버리려고 그는 “엄청나게 빠르게 번식하는 토끼 스무 마리”를 풀어놓는다. 토끼들은 섬에 있는 풀과 새들의 알을 먹어 치운다. 점점 늘어나 먹이가 부족해진 토끼들이 생존하려고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불행,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생겨날 거라고 그는 예측하지 못했다.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통제 의지’가 실패로 돌아간 현장을. 그는 이제 토끼가 무섭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기괴한 존재로 돌변해 버린, 자연스러움과 본능을 잃어버리고 자연의 축소판일 ‘섬’을 혼자 차지하겠다는 그의 필요로 더는 토끼가 아니게 된 토끼를. “이 모든 일은 소리 없이 일어났다.” 늦었지만 그는 알았을까? 섬에 대한 자신의 부끄러운 지배 욕망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통제하려 할 때 빠지는 거대한 혼란과 무질서를.

번역가와 작가는 이 단편에 대해 각각 이렇게 설명했다. “문제는 주인공의 통제 의지”며 “주변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지나친 통제는 괴물을 만들어”낸다고.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갔다가 시간이 흘러 내가 근래 ‘통제’라는 단어를 이 책 저 책에서 마주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누군가를, 통제해서는 안 되고 통제할 수 없는 생명과 독자적 존재를 그러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자신 안의 어떠한 욕망을 햇빛에 투명하게 비춰보기. 그 또한 해야 하는 일이리라.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