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무슨 베르데? 그런 나라가 있어?”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시작되자 전 세계 축구팬 사이에는 이런 얘기가 오고 갈 정도로 낯선 나라가 큰 화제로 떠올랐다. 서아프리카 인구 53만명의 소국 카보베르데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67위에 불과했다. 이에 축구팬들은 월드컵 출전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어쩌다 운 좋게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오른 나라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카보베르데는 보고도 믿지 못할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축구팬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이번 대회 우승팀 스페인,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한 조에 편성되고도 3무를 기록하며 32강에 올랐을 정도다. 특히 카보베르데는 스페인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스페인이 우승한 데다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이 8경기를 치르는 동안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유일한 상대가 바로 카보베르데라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팀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32강에선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끝에 2-3으로 석패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투지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한국 축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전술도, 투지도 없는 축구로 일관하다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사퇴했다. 하지만 이번 졸전의 뿌리를 감독 개인의 역량 문제로만 돌린다면 이는 본질을 비켜 가는 일이다. 이번 참사는 이미 감독 선임 과정에서 예견된 결과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 의혹이 일자 국회는 2024년 9월 청문회를 열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그해 11월 대한축구협회를 특정감사해 총 27건의 위법 및 부당 업무 처리를 확인했다. 이에 문체부는 감독 선임 절차 부적정 등 기관 운영 부실 책임을 물어 정몽규 회장 등 관련자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축구협회에 요구했다. 또 국가대표팀 감독 재선임 방안 등을 포함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문체부는 회장 지시를 이유로 규정상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방법으로 면접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홍 감독 내정·발표 후에 이사회에 서면으로 의결을 요구하는 등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한 사실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이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적반하장 격으로 문체부를 상대로 특정감사 결과 통보 및 조치요구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은 협회 패소 판결을 내려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가 적법하다고 확인했다.
한국 축구가 졸전 끝에 탈락하자 문체부는 지난 6일 박지성 FIFA 분과위원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오는 30일 청문회를 열어 이번 사태를 면밀히 따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월드컵 성적표가 초라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혁신위를 만들고 청문회를 여는 모습부터가 이미 낯익은 레퍼토리다. 혁신위든 청문회든, 이번에도 책임자 몇 명 문책하고 흐지부지되는 ‘이벤트’로 끝난다면 한국 축구는 또 길을 잃을 수 있다.
인구 53만명에 불과한 카보베르데는 우승팀 스페인이 슈팅 27개를 쏟아부었지만 수비진과 골키퍼가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냈다. 인구 5000만명의 한국 축구는 최소한의 원칙과 상식이라도 지켜내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