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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함께 일하고 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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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이 바꾼 노동의 미래 성찰
단순노동 해방과 인간 가치 하락
니체·아렌트 등 철학으로 풀어내

늘어난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지
‘인간은 일 없이 살 수 있나’ 질문

일이 사라진 세상/ 이진우/ 다산초당/ 1만9000원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브라질-노르웨이 경기. 하프타임이 끝난 뒤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경기장으로 걸어 나와 심판에게 공인구를 건넸다. 인간의 몫이던 의식(儀式)을 로봇이 대신한 그 순간은 인공지능(AI) 시대가 더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같은 로봇은 공장에서 부품을 나르고, 물류창고에서는 팰릿을 옮기고 쌓는다. 생성형 AI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역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계산까지 순식간에 끝낸다. 인간의 삶은 이전보다 편리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은 점점 줄어든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할까.

생성형 AI 이미지
생성형 AI 이미지

니체 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책 ‘일이 사라진 세상’에서 AI가 가져올 노동의 종말 시대를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일이 사라진 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저자는 AI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대상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가장 큰 위기는 실업이 아니다. ‘나는 사회에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감각을 잃는 것이다. 자본과 기술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공동체가 약화할수록 인간의 쓸모는 점점 희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진우/ 다산초당/ 1만9000원
이진우/ 다산초당/ 1만9000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니체와 한나(해나) 아렌트, 마르크스, 버트런드 러셀 등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오늘날 AI 현실과 연결한다. 난해한 철학 개념을 나열하기보다 일상 사례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의 철학적 중심축은 아렌트가 구분한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 개념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며, 타인과 함께 공적 세계를 이루기 위해 행위한다. 저자는 AI가 인간의 노동 대부분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 해서 인간이 곧바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노동의 소멸이 곧바로 자유의 도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자 사회에 길든 인간에게 남는 것은 늘어난 여가가 아니라 더 커진 소비 충동일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진짜 과제는 노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노동 이후의 삶을 정치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기술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아렌트의 경고도 함께 소환한다. “우리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 늘어난 자유와 시간을 오직 소비하는 데만 탕진할지도 모른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인간의 악의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중단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며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자유는 어느새 순응으로 바뀌고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많은 사람이 주말과 휴일에도 스마트폰과 영상 콘텐츠를 끝없이 소비하지만 정작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했는지는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AI 시대에는 이런 공허함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가 기계의 부속품이 됐다면 AI 시대에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알고리즘의 판단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전문직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같은 직업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직업보다 업무가 먼저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진단 자료 분석이나 계약서 검토처럼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AI가 맡고, 인간은 상담과 전략 수립, 최종 판단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업은 남더라도 필요한 인력 규모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AI가 초래할 경제적 불평등도 중요한 화두다. 생산성은 크게 높아지겠지만, 그 성과가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책이 AI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는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많은 자유 시간을 선물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공부와 예술, 공동체 활동,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 후반에서 저자는 다시 니체를 불러낸다. 니체는 인간을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 이해했다. AI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배우고 성장하려는 의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일자리의 상실이 아니라 ‘자기 극복의 종말’이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능력을 발휘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에 기여해 왔다. 따라서 AI 시대의 과제는 사라지는 일자리를 붙잡는 데만 있지 않다. 노동의 의미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있다.

저자는 AI의 발전을 두려워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인간에게 돌려줄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묻는다. 기술은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는 왜 일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