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인성이 말을 타고 숲과 국도를 질주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한 배우가 다른 배우를 말 위로 끌어올리는 고난도 승마 액션이 펼쳐지고, 한 마리 말에 두 사람이 올라타 달린다.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서도 말은 멈추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에서 펼쳐지는 승마 액션은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관객에게 한 가지 궁금증을 남긴다. 과연 저 장면들은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조인성은 ‘호프’의 승마 액션을 위해 3개월간 매주 2~3일씩 승마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액션 장면 역시 CG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직접 소화했다. 실제 말과 배우의 호흡을 바탕으로 완성된 장면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마사회(KRA·회장 우희종)에 따르면 영화 속 액션 상당수는 고도의 훈련과 통제된 환경을 전제로 하면 현실에서도 구현할 수 있지만, 일부 장면에는 말의 신체 능력과 안전을 고려한 영화적 허용이 필요하다.
◆ 시속 60㎞ 질주 가능하지만…숲속 전력질주는 현실과 달라
영화 속 말의 정확한 품종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빠른 말로 꼽히는 경주마 서러브레드의 최고 속도는 시속 60㎞ 안팎에 이른다.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2000m 경주의 최고 기록인 2분4초3을 속도로 환산하면 약 시속 58㎞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경주마의 최고 속도는 시속 70.35㎞에 달한다. 말이 자동차에 버금가는 속도로 달리는 것 자체는 허구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달리는 장소와 지속 시간이다. 경마장의 주로는 말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평탄하게 관리되지만, 영화 속 무대는 나무와 바위가 뒤엉킨 숲과 시야가 제한된 험지다. 실제 승마에서는 장애물을 피하고 말과 기승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경마장에서 기록되는 속도를 그대로 내기 어렵다.
지구력 역시 영화와 현실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다. 말은 장거리 달리기에 특화된 마라토너라기보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단거리 주자에 가깝다. 실제 경마의 주요 경주 거리가 대체로 1000~3000m대에 형성된 것도 최고속도에 가까운 질주가 상당한 체력 소모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말 추격전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하기보다 질주와 감속을 반복하며 말의 호흡과 체력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조인성이 승마 훈련 과정에서 강조한 ‘말과의 호흡’도 여기에 닿아 있다. 기승자는 말의 움직임과 호흡, 피로도를 읽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영화 속 짧고 강렬한 질주 장면 뒤에는 촬영에 적합하도록 훈련된 말과 배우의 오랜 준비가 있었던 셈이다.
◆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 낚아채기…“극히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현실성이 궁금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을 낚아채는 액션이다. 어촌계 리더 현호 역의 서범식이 말을 몰면서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 조인성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다. 성인 남성을 상대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말의 움직임까지 제어해야 하는 만큼 고난도 기술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불가능한 동작은 아니다. 한국의 전통 기마 무예인 마상재에는 달리는 말 위에서 서거나 눕고, 몸을 말 옆으로 숨기는 등 기승자가 말 위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기술이 포함돼 있다. 조선시대 기병의 기마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군사 훈련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선보인 국가적 기예이기도 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상체의 중심을 크게 이동시키는 기술 자체는 수백 년 전부터 실제로 존재해왔다.
다만 영화 속 장면을 일반적인 승마 기술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훈련된 기승자와 촬영용으로 준비된 마필, 전문 스턴트 및 안전 관리 인력이 갖춰진 통제된 환경에서 가능한 고난도 액션이다. 현호 역의 서범식이 무술감독 출신의 베테랑 배우라는 점도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다. 영화의 첫 티저 포스터에서 말을 타고 등장한 인물 역시 서범식이었다.
한 마리 말에 두 사람이 올라타 질주하는 장면도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놓여 있다. 짧은 거리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말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크게 증가한다. 말이 감당할 수 있는 하중은 품종과 체격, 근육량, 훈련 정도뿐 아니라 안장과 장비의 무게, 이동 거리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승마 현장에서는 통상 말 체중의 20% 이내를 하나의 권장 기준으로 삼는다. 체중 500㎏인 말이라면 사람과 안장을 포함해 100㎏ 안팎이 기준이 된다.
성인 남성 두 명이 한 마리에 올라타면 하중은 150㎏ 안팎으로 늘어날 수 있다. 말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체력 소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빠른 속도로 장시간 이동한다면 신체적 부담과 안전 위험은 더욱 커진다. 짧은 액션 장면으로 구현하는 것과 실제 승마에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 총성에도 달리는 말…핵심은 ‘둔감화 훈련’
말 위에서 총을 쏘는 장면도 현실의 역사와 연결된다. 우리 조상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를 대표적인 기마 무예로 익혔다. 말과 기승자가 함께 움직이는 상황에서 무기를 다루는 기술은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발전해왔다.
현대 영화 촬영에서는 활 대신 총을 사용하는 만큼 말의 반응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말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도록 진화한 동물인 만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총성에 놀라지 않도록 촬영용 말에게는 사전에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둔감화 훈련이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총성이 울려도 말이 평온하게 질주하는 장면 역시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촬영용 마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결국 ‘호프’의 승마 액션은 ‘전부 진짜’와 ‘전부 가짜’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눠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말이 시속 60㎞ 안팎으로 질주하고,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의 중심을 크게 이동하며, 말 위에서 무기를 다루는 것 자체는 실제 승마와 전통 기마술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반면 험지를 전력으로 장시간 질주하거나 성인 두 명을 태운 말이 빠른 속도로 계속 달리는 장면은 현실의 말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와 거리가 있다.
영화는 현실의 기술과 상상력을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호프’의 승마 액션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크린 속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액션의 도구가 아니다. 배우와 말이 함께 움직이고, 말의 체력과 본능을 이해하며, 수개월의 훈련과 전문적인 안전 관리가 더해져야 비로소 몇 분의 질주 장면이 완성된다.
영화관을 나선 뒤 실제 말과의 교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말을 만날 수 있는 길도 있다. 한국마사회는 말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신체 균형 회복을 돕는 ‘힐링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에는 전년보다 300명 늘어난 약 4000명 규모로 진행되며, 소방관과 경찰관 등 사회공익 직군과 취약계층은 물론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다. 하반기 과정은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신청은 8월 말 호스피아 홈페이지를 통해 받는다. 별도 심사 없이 자동 추첨 방식으로 참여자를 선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