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드론과 인공지능(AI)이 전장을 바꾸고 있지만,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러시아는 반복되는 동원령에도 초급 지휘자 부족을 극복할 수 없었고, 우크라이나도 심각한 병력 부족으로 인해 동원 연령을 계속 높인다. 병사는 징집할 수 있어도 전장을 책임질 소대장과 중대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부족한 것은 병력이 아니라 경험과 판단력을 갖춘 간부다. 세계 각국이 병력난 속에서도 장교 양성에 명운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란과의 연쇄 충돌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예비군 동원 체계를 유지하며 전쟁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힘은 징병제 자체가 아니라 우수한 간부를 확보하는 시스템에 있다. 대표적인 탈피오트(Talpiot) 프로그램은 전국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를 선발해 학문과 군사교육, 연구개발을 결합한 뒤 첨단 전력과 정보체계를 이끌 핵심 장교로 육성한다. 병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재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다.
핀란드 역시 엄격한 과정을 거친 예비역 장교들을 국가 리더십 자산으로 존중하며 유사시 즉각 부대를 지휘할 간부로 관리한다. 프랑스의 육사 ‘생시르(Saint-Cyr)’ 또한 나폴레옹 시대의 전통을 지키며 현대전의 전문성을 고도화하고 있다. 전투력은 결국 장교와 부사관의 전문 직업성에서 나오기에, 장교 양성은 국가 군사 전문직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최근 한국 국방부의 ‘통합사관학교’ 논의는 우려스럽다. 국방부는 합동성 강화와 규모의 경제, 우수 인재 확보를 이유로 제시하지만, 이는 검증이 필요한 정책 가설이지 입증된 사실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군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관학교가 세 곳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장교와 부사관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문제의 원인을 외면한 채 교육기관의 형태부터 바꾸는 것은 처방의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다.
특히 합동성을 위해 사관학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계 최강의 합동작전 능력을 갖춘 미군은 웨스트포인트(육사), 아나폴리스(해사), 콜로라도스프링스(공사)를 철저히 독자 운영한다. 미군의 합동성은 1986년 ‘골드워터·니컬스 법’ 개혁을 통해 각 군의 전문성을 최고조로 유지한 상태에서 합동 근무 체계를 제도화하여 완성됐다. 합동성이란 군종의 벽을 물리적으로 허물어 얻는 것이 아니라, 각 군의 전문성이 성숙한 이후 그 상부구조 위에서 발현되는 능력이다.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이 아니다. 해군은 바다를 지배하는 문화를, 공군은 항공우주력을 통제하는 문화를, 육군은 지상전의 처절한 사선을 넘나드는 군사 문화를 미래 지휘관의 DNA에 각인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군종별 정체성은 교과목이나 캠퍼스를 합치면 된다는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오랜 역사와 자긍심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축적되어야 군의 핵심 전투력이 발휘될 수 있다.
통합사관학교가 무조건 실패한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 교육체계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백년대계인 장교 양성체계를 바꾸려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통합이 정말 더 우수한 장교를 양성하는가. 청년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가. 해군과 공군의 전문성을 지금보다 높일 수 있는가. 이러한 검증과 사회적 숙의 없이 통합만 외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행정 개편일 뿐이다.
인구 절벽 시대, 국방의 경쟁력은 병사의 숫자가 아니라 뛰어난 장교와 부사관의 확보에 있다. 세계 전쟁사는 정예 강군이 행정 편의적인 조직개편에서 탄생한 적이 없음을 증명한다. 우수한 청년들이 군복을 명예롭게 여기고 군사 전문직을 평생의 소명으로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국방 개혁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과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