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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털이 어때서”…괴롭힘 가해자가 된 도쿄 남성 직장인들

‘도쿄 쿨 비즈’ 정책으로 다리털 괴롭힘 ‘스네하라’ 논란
남성 61.8%·여성 63.5% ‘남성 체모 신경 쓰인다’
‘성 형평성’ vs “괴롭힘 분류 그만”…팽팽한 논쟁

최근 일본 도쿄도가 에너지 절약과 업무 효율을 위해 ‘도쿄 쿨 비즈’를 도입하고 올 여름 처음으로 직장 내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바로 남성 직원들의 다리털이다. 

 

동료들의 다리털을 억지로 봐야 하는 여성들이 시각적 테러를 호소하며 다리털(스네게)과 괴롭힘(하라스먼트)을 합친 ‘스네하라’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여기에는 털 한 올조차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에티켓으로 보는 인식과 일상의 온갖 불편함에 ‘괴롭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신조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도쿄 쿨 비즈’ 정책으로 반바지 착용이 허용되면서 다리털 괴롭힘 ‘스네하라’ 논란이 일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최근 ‘도쿄 쿨 비즈’ 정책으로 반바지 착용이 허용되면서 다리털 괴롭힘 ‘스네하라’ 논란이 일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 “청결감 있어서 좋아”…‘사회적 예절’된 일본의 제모 인식

 

일본 사회에서 체모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이지 않게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특히 여성들에게 엄격하게 적용돼 왔다. 

 

일본에서 ‘탈모(다츠모)’라 불리는 제모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일본의 귀족문화가 꽃핀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부터 원래 눈썹을 밀고 그 위에 눈썹을 새로 그리는 ‘히키마유’ 문화가 교토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 미니스커트와 원피스가 유행해 피부 노출이 늘어나면서 제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제모가 단순한 미용을 넘어 자기관리와 위생, 에티켓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남성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시각이 확산 중이다.

 

BBC에 따르면 남성 미용 전문 업체 고릴라 클리닉의 후나츠 아키후미 원장은 “최근 미용 목적뿐 아니라 반바지를 입을 때의 사회적 에티켓을 이유로 병원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여성들이 ‘남성은 다리털이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 남성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레이저 제모를 받으려 한다”고 전했다.

 

다리털 제모를 받고 있는 남성. 게티이미지뱅크
다리털 제모를 받고 있는 남성.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지난해 12월 일본 에미날 클리닉 멘즈가 20~30대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성 제모에 대한 관심 추이’ 조사에 따르면, 남성 체모가 ‘신경 쓰인다’고 답한 비율이 남녀 모두 절반을 넘었다.

 

세부적으로 ‘전신 제모는 필요 없지만 체모가 진한 부위는 신경이 쓰인다’는 답이 남성 35.9%, 여자 50.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매우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제모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남성 25.9%, 여성 12.7%로 남성이 더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남성 제모 선호 부위로 남녀 모두 얼굴과 다리털을 1, 2위로 꼽아 눈에 잘 띄는 부위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모 관리를 하고 있는 남성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서도 남녀 모두 ‘청결감이 있어서 좋다’를 1위로 답해 제모가 사회적 예절로 비치고 있음을 드러냈다.

 

◆ 괴롭힘 남용이 만든 다리털 괴로힘, 성 형평성 문제까지

 

주목할 점은 체모에 대한 예민함이 단순한 에티켓 강조를 넘어 ‘스네하라’라는 단어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최근 괴롭힘을 뜻하는 하라스먼트의 축약어 ‘하라’가 붙은 여러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직장 내 권력형 괴롭힘을 가리키는 ‘파워하라’, 성희롱을 뜻하는 ‘세쿠하라’ 등 사회적 용어로 등장했다.

 

그러나 점차 ‘하라’라는 용어가 여기저기 쓰이고 있다. 체취나 향수 냄새로 불편을 주는 ‘스메하라’, 끊임없이 보도되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소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오타니하라’ 등 30여개의 신조어가 쏟아졌다. 일본의 한 칼럼은 “하라스먼트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상적 불편함이 ‘괴롭힘’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문화 속에서, 반바지 출근으로 드러난 다리털도 ‘스네하라’라는 일종의 괴롭힘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부터 ‘도쿄 쿨 비즈’ 정책으로 회사 내에서 반바지를 입고 있는 직장인들. 유튜브 채널 ‘APT’ 캡처
지난 4월부터 ‘도쿄 쿨 비즈’ 정책으로 회사 내에서 반바지를 입고 있는 직장인들. 유튜브 채널 ‘APT’ 캡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스네하라’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여성은 무릎 아래 제모를 하지 않으면 다리털이 나 있다고 줄곧 비판 받아온 것도 사실”, “남성들이 수십년 동안 여성의 체모나 스타일에 불평해온 역사가 자기들한테 돌아온 것 뿐이다”라며 성 형평성을 지적하는 한편 “하라스먼트라는 단어를 잘못 가르치니 이렇게 되는 것”, “그럼 민소매 옷을 입는 여성도 괴롭힘이 된다. 모든 것을 괴롭힘으로 분류하는 움직임을 멈춰라”라는 반응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다마다 아쓰코 일본 주부대학 프랑스문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제모와 발 관리, 의복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남성들에게 반바지나 샌들 착용을 권장한다면 그들에게도 여성과 동일한 외모 관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타나베 노보루 도쿄도 환경 공무원은 BBC에 “혹독한 더위 속에서 직원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은 것일 뿐 무엇을 입으라고 지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근무 복장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