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역사는 종교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결국 종교를 가장 공정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어떤 사람을 길러냈는가’에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삶 속에 그 종교의 가치와 철학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원복(1916~2006) 전 선화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은 그런 점에서 다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원로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교육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교육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개성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개성 호수돈여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언어학과 교수법을 연구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와 학생과장을 맡으며 촉망받는 여성 교육자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여성으로서 해외 유학을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를 앞선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움직인 것은 명예나 출세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일관되게 흐르던 정의감과 진리 탐구의 자세였다. 학생 시절 일제의 탄압 속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투옥되었고, 가난한 친구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우등상과 상금을 받고도 스스로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겨 상장은 불태우고 상금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몰래 나누어 주었다는 일화는 그의 인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대학 졸업 후 “하나님이 계시거든 직접 저에게 나타나 제 갈 길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수개월 동안 기도했다는 고백은 그가 평생 추구한 것이 지식에 앞서 진리였음을 말해 준다.
1954년 그는 막 태동하던 통일교회를 찾아가게 된다. 대학 당국의 요청으로 학생들이 왜 그곳에 모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직접 듣고 판단한 끝에 새로운 신앙을 선택했고, 이듬해 대학은 그에게 신앙과 교수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학교에 남으려면 교회를 떠나고, 교회를 선택하려면 학교를 떠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그는 결국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당시 사회적 명성과 안정된 삶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교수직은 내려놓았을지언정 교육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원복은 이후 가정연합에서 식구 교육과 원리교육에 힘썼고,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 선교와 국제 교육을 담당했다. 가정연합 핵심 교리서인 『원리강론』의 영어 번역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의 소통을 맡았고, 오랜 해외 활동을 통해 국제적 교육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교육자적 역량이 가장 빛난 곳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였다. 그는 1977년부터 1987년까지 9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장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청소년을 길러냈다. 대학 교수로 명성을 얻은 교육자가 청소년 교육 현장의 교장을 맡았다는 사실은 교육을 직업이 아니라 사명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그가 학교를 이끌던 시기에는 훗날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할 인재들이 선화에서 꿈을 키웠다. 교육의 성과는 한 세대가 지난 뒤 제자들의 삶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가 남긴 교육철학은 오늘 읽어도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학교는 꿈과 시가 있는 인간 형성의 도장”이라고 했고, “학교는 사회를 이끌 실력을 갖춘 사람뿐 아니라,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유와 저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목표를 성적이나 출세가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데 두었던 것이다.
그는 청소년들에게도 끊임없이 꿈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시를 잃지 말고,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이 되라고 당부했다. 예술은 화려한 무대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겨울처럼 꽁꽁 언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했다. 또 독서를 “단칸방에서도 몇백 명의 훌륭한 스승을 모시는 길”이라 부르며 평생 책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권했다. 특히 그의 교육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소아(小我)와 대아(大我)’의 개념이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향한 종적인 관계와 인류를 향한 횡적인 관계를 함께 의식할 때 비로소 더 큰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공동체와 인류를 생각하는 교육, 이것이 그가 평생 청소년들에게 심고자 했던 가치였다.
교육은 결국 학교라는 제도보다 사람이라는 결실을 통해 증명된다. 한 사람의 삶은 한 공동체의 철학을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가정연합은 창립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그 공동체가 어떤 사람을 길러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원복의 삶은 그 질문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을 들려준다. 그는 신앙 때문에 교수직을 내려놓았지만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고, 신앙을 얻은 뒤에도 평생 사람을 키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시간이 지나면 건물보다 사람이 남고, 교리보다 삶이 기억된다. 최원복이라는 이름은 가정연합이 한국 사회에 남긴 하나의 교육적 유산으로 다시 평가받아도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