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반도체 분야 국내 기업들과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총 9500억달러(약 1375조원) 규모의 반도체 장기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인공지능(AI) 리더들과 만나 “대한민국은 대체불가한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글로벌 AI 기업인들과 함께한 만찬 자리에선 “우리는 식구다”라는 건배사를 제안하며 의기투합했다.
①李대통령 “기업가치 합계 ‘2경원’ 기업들과 대규모 AI 투자 이니셔티브 준비”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열린 AI 서밋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통해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기업가치 합계 2경원이 넘는 대한민국과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오랜 시간 뜻을 모아 준비해온 대규모 AI 투자 이니셔티브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AI 시대는 기술과 생산 역량, 데이터와 에너지, 시장과 인재가 하나의 거대한 공급망으로 연결되는 시대”라며 “이 공급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축하느냐가 지금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서밋을 계기로 한·미 기업 간 대규모 반도체 협력도 구체화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은 향후 5년간 2000억달러(약 290조원) 규모의 첨단메모리 반도체 공급과 AI 칩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위탁생산)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며 “SK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과 향후 5년간 7500억달러(약 1085조원) 규모에 달하는 첨단메모리 반도체의 장기적 공급 협력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AI 서밋에서 “대한민국만의 성장이 아닌, AI의 기회와 혜택을 전 세계와 함께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책임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AI 기본사회’의 철학이 국제사회에도 확산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달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반도체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공급망 안전장치이자 글로벌 반도체 부족을 예방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투자”라고 설명했다.
②李대통령, 젠슨 황·이재용·최태원 등과 ‘샌프란 깐부회동’
“우리는 식구다.”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의 한 현지 식당에서 이 대통령과 기업 가치 합계 1경70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핵심 경영인들은 서로의 맥주병을 부딪치며 이같이 외쳤다. 해변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서 가진 이번 ‘맥주 회동’에서 “우리는 식구다”라는 즉석 건배사를 제안한 건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에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을 ‘식구’ 즉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 CEO가 “위 아 패밀리(We are family)”라고 하자 이 대통령은 “내가 ‘우리는’ 하면 ‘식구다’(라고) 한 번 해달라”며 건배를 요청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우리는”이라고 외치자 참석자들은 환한 웃음과 함께 “식구다”로 화답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건배사는 글로벌 AI 기업들과 한국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으며 긴밀한 협력과 공조를 당부하기 위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날 만찬에는 미국 기업인으로는 황 CEO와 혹 탄 브로드컴 사장 겸 CEO, 라니 보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하드웨어 사장 등이 참석했고, 한국 기업인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이 자리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참석자들은 글로벌 AI 공급망 분야 협력에 모두 힘 모으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밝혔다.
황 CEO가 두 차례 방한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과 이른바 ‘치맥·삼겹살 회동’을 가졌듯 이 대통령도 현지 식당에서의 만찬을 통해 ‘샌프란 깐부회동’을 갖고 기업인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 이 대통령은 황 CEO에게 과거 용산 전자상가를 다니던 시절이 큰 에너지원이 됐냐고 물었고,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농담과 장난이 섞인 대화도 이어졌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날 자리의 밥값을 내겠다고 하자 황 CEO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셔도 되는지 물었고, 이 대통령은 “공무원이라서 안 된다”고 재치 있게 답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황 CEO가 “한국은 부자 나라(Korea so rich)”라고 말하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묻자 이 대통령은 “4만 가까이 된다. 작년에는 1% 근처였는데 올해는 3%를 넘길 것 같다”면서 기업인들을 가리켜 성장의 공을 돌리는 몸짓을 보였다.
이어 이 대통령은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물가상승률은 3% 정도인데 AI·반도체 가격이 올라가면서 명목 GDP 성장률은 다시 올라가는 (일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이 황 CEO를 향해 “당신 덕분(Thanks to you)”이라고 하자 황 CEO는 “그럼 맥주 한 병 더해도 되나. 한 병 더 필요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만찬 비용은 배 부총리가 낸 것으로 전해졌다.
③李 “한·남미, 강점 결합한다면 모두에 도움되는 가치사슬 구축 가능”
미국 일정을 마치고 남미 3개국(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순방에 본격 돌입한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한국과 남미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메르코수르’(남미 공동시장)와의 무역협정 협상 재개 및 핵심 광물 협력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스페인 EFE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남미 협력은 단순히 제조업 제품을 통해 천연자원을 교환하는 관계가 아닌, 혁신과 투자, 기술, 그리고 인재를 통해 함께 가치를 창출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남미 국민들에게 이 대통령의 방문 목적을 스페인어로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은 농업, 식량 생산, 에너지, 핵심 광물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국”이라며 “한국은 첨단 제조업, 디지털 기술, 조선, 배터리, 혁신 분야에서의 글로벌 선도국”이라고 진단했다. 또 “남미는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은 첨단 기술과 산업 노하우, 투자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양측의 강점을 결합한 협력 확대 구상도 내놨다. 그는 “강점을 결합한다면 양 지역 모두에 도움이 되는 회복력 있는 가치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며 “함께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며 양 지역 모두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04년 체결·발효된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현대화하는 등 남미와의 경제협력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도 이번 방문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