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고대하던 여름휴가. 그런데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두통이나 발바닥 통증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피곤했던 일상에서 벗어났는데도 오히려 몸살처럼 아픈 이 현상을 ‘레저 시크니스(Leisure Sickness)’로 불린다.
의학적 질환명은 아니지만 긴장 상태가 풀리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피로와 통증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 휴가 왔는데 왜 아플까…긴장 풀리면 몸도 반응
레저 시크니스는 네덜란드 심리학 연구진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장기간 긴장 상태가 이어진 뒤 휴식을 시작하면서 몸살이나 두통, 피로감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휴가가 시작됐다고 즉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고, 통상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이 시작되면서 각성 수준이 서서히 낮아지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피로와 근육 긴장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자율신경계와 면역체계의 균형도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간 긴장 상태가 이어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피로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휴가 중 신체 활동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도 통증을 키우는 요인이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근육과 관절이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리, 어깨, 발 등 근골격계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 캐리어·장거리 보행…휴가지가 통증을 키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캐리어 증후군’이다. 여행 중 무거운 캐리어를 한 손으로 장시간 끌면 몸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척추와 골반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 또 손목과 팔에 가해진 부담은 어깨와 목으로 이어지고, 특히 계단이나 턱을 넘기 위해 캐리어를 갑자기 들어 올리는 동작은 허리 근육과 인대에 순간적인 과부하를 줄 수 있다.
평소에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근육이 이러한 부담을 어느 정도 보상해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레저 시크니스 상태에서는 근육의 피로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회복 능력도 일시적으로 떨어져 같은 자극이라도 더 큰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휴가철 민감한 부위는 바로 ‘발’이다.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하루 보행량이 평소보다 3~4배 늘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과정에서 발바닥 충격을 흡수하는 족저근막에는 반복적인 미세 손상이 쌓일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쿠션이 부족한 샌들이나 슬리퍼를 장시간 착용하면 발바닥에 가해지는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족저근막염 환자는 28만9338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름철인 7월 환자는 4만6183명으로 연중 가장 많았으며, 환자가 가장 적었던 2월(2만8157명)보다 60% 이상 많았다. 휴가철 활동량 증가와 신발 선택이 발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 휴가 첫날은 쉬는 날…몸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
이에 휴가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도착하자마자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보다 몸의 긴장을 충분히 풀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동으로 지친 첫날부터 관광이나 레저 활동 대신 적절한 수면과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굳어 있던 근육과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좋다.
따라서 휴가 첫날은 무리한 일정보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장거리 이동 후에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캐리어는 한 손으로 오래 끌기보다 번갈아 사용하고, 장시간 걷는 일정에는 쿠션감 있는 운동화를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행 후에도 목·허리·발바닥 통증이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라면 단순한 휴가 후유증으로 넘기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치료는 원인에 따라 물리치료와 운동치료, 약물치료, 추나요법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될 수 있다.
홍순성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레저 시크니스로 나타나는 통증은 장기간 누적된 피로와 긴장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며 “휴가 중에는 몸의 회복 속도에 맞춰 충분히 쉬고, 통증이 지속되면 방치하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