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름휴가차 고향 대구를 다녀왔다. 휴가라고는 하지만 쉬러 가는 여행은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는 노모를 찾아뵙는 것이 이제는 고향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
며칠 머무는 동안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반가운 안부 인사도 잠시, 대화는 하나같이 지역 경제 이야기로 이어졌다. 누구도 대구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난 곳은 대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동성로의 한식당이었다. 한때 저녁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거리는 한산했고, 빈 점포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식당 사장은 “예전에는 저녁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하루 매출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대한민국 3대 도시로 불리던 대구는 지금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대학교수인 친구는 “섬유와 기계 등 전통 주력산업은 성장 한계에 도달했지만 이를 대체할 미래 산업 육성은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지금도 어렵지만, 앞으로 먹고살 새로운 산업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대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냐”는 그의 탄식이 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 가운데 핵심 사업인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이 광주 군공항 일대를 중심으로 추진된다는 소식은 지역민에게는 허탈감을 안겼다. 미래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지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작지 않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지역 국회의원으로 향했다. “도대체 우리 지역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이다. 대구·경북에는 모두 25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다선 중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역을 위한 국가 예산 확보와 대형 국책사업 유치 과정에서 지역 정치권이 얼마나 치열하게 뛰었는지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는 많지 않다.
더욱 씁쓸했던 것은 지난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현역 국회의원 5명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던 일이다. 국가적 현안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 중앙 정치무대에서 역할을 해야 할 의원들이 시장 선거에 몰리면서 “의원직을 개인 정치의 징검다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구시장을 지낸 권영진 의원(대구 달서병)이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정점식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추태를 보였다는 뉴스도 전해져 지역민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일부 지역 원로와 전직 언론인들이 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은 무조건 당만 보고 찍는 정치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새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행정통합,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현안을 해결하려면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현실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비록 지역주의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특정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던 정치문화에서 벗어나 후보의 역량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하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변화의 열쇠는 대구·경북 유권자에게 있다. 2028년 총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정치인의 소속 정당이 아니라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지역을 살리는 것은 정당의 간판이 아니라 정치의 성과다. 이제는“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적 구호를 반복할 게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TK의 미래도 다시 도약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