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가 정점식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은 권영진 의원에게 사실상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권 의원이 정 원내대표를 찾아가 사과하고 정 원내대표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지도부는 당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탈당 요구가 과도하다는 반론이 나오는 가운데 중앙윤리위원회는 곧바로 권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권 의원에 대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공개 회의에서 이견 없이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지도부는 권 의원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명을 포함한 징계 절차에 들어갈 방침이다. 정 원내대표는 권 의원 문제를 논의할 당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 원내대표는 회의에 앞서 “지난 사감을 모두 잊고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원내대표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이날 오전 원내대표실을 찾아 정 원내대표에게 사과했다. 앞서 당 소속 의원 단체 대화방에 사과문을 올리고 대구시당위원장직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사건 발생 나흘 만에 직접 사과에 나선 것이다.
권 의원은 면담 뒤 “제 언행은 이유를 불문하고 제 부족함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정 원내대표께서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은 너무나 큰 실수였다. 아직도 내가 ‘인격적으로, 정치적으로 멀었구나’ 생각했다”고도 했다. 탈당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이 정도로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정 원내대표는 “권 의원이 저를 방문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저 역시 그걸 수용했다”고 밝혔다. 의원총회는 예정대로 목요일에 열기로 했다며 “각자 조금씩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가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당내에서는 이번 사건을 흐트러진 내부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조광한 최고위원은 맹자의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를 언급하며 “본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께 상처를 남겼다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원외 당협위원장 40여명도 이날 당 사무처에 권 의원 징계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초유의 폭력, 폭언 사태로서 당의 명예와 위신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며 “윤리위의 즉각적인 조사 개시와 일벌백계 차원의 엄정한 최고 수준 중징계 처분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반면 자진 탈당 요구는 과도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4선 중진 김태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고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면서도 “공당의 목적은 응징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무너진 규범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친한(친한동훈)계 우재준 최고위원도 “권 의원의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사안은 원내 상임위 배분 과정에서 원내대표와의 갈등 속에 발생한 일인 만큼 원내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지도부가 윤리규정을 이야기할 권위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도부가 다른 막말 논란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이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온 쇄신파 모임 ‘대안과미래’ 소속이라는 점에서 징계 수위에 계파적 고려가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비당권파 의원은 “이번에 징계를 하지 않으면 다른 윤리위 안건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서 당권파가 중징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 지도부는 “당 기강을 바로 세우는 문제로 계파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윤리위는 이날 권 의원과 함께 당내 최다선 조경태, 초선 비례대표 진종오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윤리위원 1명이 사퇴해 재적 위원이 5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이날 회의에는 윤민우 위원장을 포함한 3명만 참석했지만, 의결 정족수를 충족해 징계 개시를 의결했다.
조 의원은 야당 몫 국회부의장 선출 과정에서 박덕흠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등 다른 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제소됐다. 친한계인 진 의원은 6·3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있는데도 무소속 한동훈 의원을 지원한 혐의로 징계 요청서가 접수됐다. 당 안팎에서는 친한계 의원 다수가 징계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윤리위는 한 의원 지원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고 보좌진까지 파견한 진 의원을 우선 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리위는 지도부의 자진 탈당 권유와 별개로 권 의원 사건에 대한 징계 절차를 자체적으로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위는 조만간 세 의원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본인 소명을 들은 뒤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징계는 제명, 탈당 권고, 당원권 정지, 경고 등으로 나뉜다.
다만 윤리위 내분으로 징계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종환 윤리위 부위원장과 황경선 윤리위원은 “윤민우 위원장과 정경욱 윤리위원이 ‘당대표 충성 맹세용’ 조직 운영을 하고 있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앞서 친한계 배현진 의원과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윤리위 결정이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제동이 걸린 전례가 있어, 윤리위도 이번에는 본인 소명 등 절차적 요건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