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사무직에 건설안전 영상 시청 왜?… ‘뜬금’ 법정의무교육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교육시간 느는데 실효성은 의문

직종따라 연간 최대 12시간 의무
위반 업장엔 과태료 등 행정처분
미이수 근로자에 인사 불이익도
교육 안 듣고 틀어놓는 ‘꼼수’ 만연
전문가 “내용 개선 등 내실화 필요”

사무직 직장인 윤모(30)씨는 최근 e러닝(e-learning) 법정 의무교육을 수강하던 중 ‘이동식 크레인의 최초 안전검사 실시 시기로 옳은 것’을 꼽으라는 문제를 받아들었다. 윤씨는 “크레인 기사 자격증도 없고 건설 현장과도 하등 관계가 없는 직업인데 왜 이런 교육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했다. 윤씨가 받은 의무교육 내용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위험한 장소에 부착해야 하는 안전·보건표지 중 ‘안내표지’에 녹십자표지, 비상용 기구, 응급구호표지가 해당하지만 부식성 물질 경고는 ‘경고 표지’에 해당한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무직과 판매직 종사자는 반기 6시간 이상, 연간 12시간 이상 근로자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 외 직종은 반기 12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 관리감독자의 경우에는 채용 시나 작업내용 변경 시 등 기점마다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1차 10만원, 2차 20만원, 3차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외에도 노동부가 관리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정 의무교육으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퇴직연금제도 가입자교육’ 등이 있다.

 

다른 정부 부처에서 과태료 부과 등 이수 실태를 관리하는 성폭력방지법과 가정폭력방지법 등에 근거한 4대 폭력 예방교육과 아동복지법에 근거한 아동학대 예방교육, 지능정보화기본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각종 법령에 따른 의무교육 수는 더 많다. 부처마다 관리하는 교육 내용이 다르고 적용받는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른 교육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교육 내용들은 실제 업무 현장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나 휴일에 온라인 교육을 틀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한다. 윤씨는 “직무와 관계가 없더라도 근무시간 중에 일부를 떼어 교육을 받게 하면 그러려니 하겠다”면서 “한 달 동안 10시간에 해당하는 강의를 듣고 쪽지시험을 보라는데 근무 중에 다 듣지 못해 쉬는 날이나 퇴근 후에 틀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뉴시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뉴시스

경기 한 중견기업 영업 부서에 근무하는 4년 차 직장인 김모(27)씨 역시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다”며 “매년 교육이 늘어나는 것 같긴 한데 듣지 않아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잘 모른다. 불편하고 귀찮기만 하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사용자 측이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에 회사는 미이수 근로자에게 인사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 직장인들이 교육 내용을 듣지 않고 이수만 하는 등 ‘꼼수’가 만연하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은 묘연하다. 11년 차 직장인 김모(40)씨는 “온라인 교육을 틀어두고 퀴즈는 인공지능(AI)에 물어보는 방식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법정 의무교육 사이트에는 ‘작업 또는 운전 중 이동하며 교육 영상을 시청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뜨기도 했다. 안내문은 “이를 지키지 않고 수강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며 “반드시 안전한 곳에서 수강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교육 내용 중복 등을 개선해 내실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별 법령에 따라 교육이 늘어나면서 같은 내용을 중복해 받아야 하는 ‘가짜 노동’이 강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연구위원은 “교육을 대신 수강하게 하는 식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까지 있었다”며 “개별 교육 내용을 내실화하고 급하게 양성된 법정 의무교육 인력의 전문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