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연장됐던 어음 만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가운데 최근 전국 어음 부도율이 반년 만에 8배 가까이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기화된 고금리·내수 부진 속에 자금경색을 넘어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경고음이자, ‘기업발(發) 신용 위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6월 전국 어음 부도율(금액기준)은 0.32%로 지난해 5월 이후 1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증가세도 가팔라 5월(0.1%) 대비 3배, 지난해 12월(0.04%) 대비 8배 증가했다. 어음 부도율이 반년 새 8배나 뛴 것이다.
어음 부도는 약속어음이나 환어음 등을 발행한 사업자가 만기일에 어음 금액을 지불하지 못해 결제 실패가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사업자가 지급 능력을 상실해 어음 부도를 반복하게 되면, 어음 거래 정지 처분을 받고 심하면 파산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5월 전국 어음 부도율이 0.4%로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고, 그 이전 최고치는 2015년 3월 0.41%였다.
어음 부도 금액으로 보면 상승세는 더 뚜렷해진다. 6월 어음 부도 장수는 1000장으로 평소와 비슷했지만 부도 금액은 7675억원으로 전월(2045억원) 대비 3배 가까이 뛰었다. 이는 지난해 5월(7880억원) 이후 가장 높은 금액이다. 일부 기술적 부도를 제외해도 어음 부도율 상승세가 나타난다. 차환 과정에서 만기일 불일치 등 이유로 일시적 부도 처리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뺀 어음 부도율을 보면 5월 0.10%에서 6월 0.16%로 소폭 상승했다.
한국은행 측은 중앙그룹 기업회생절차 신청에 따른 기업어음(CP) 부도 증가가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가 발행한 CP는 6월19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중앙일보 CP 비중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고,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고금리와 내수 침체 장기화에 따라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사정이 개선되지 않은 것도 큰 영향을 줬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 연장된 어음 만기가 돌아왔는데 내수 회복은 지연되고 수익 개선은 이뤄지지 않아서 부도 처리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호황은 반도체 대기업이 누리고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어려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3년6개월 만에 올리며 인상 기조를 공식화했다. 은행 대출금리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7∼15일 대출 보유 소기업·소상공인 및 중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비용 부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기업·소상공인의 28.1%가 채무부담을 느낀다고 답해 중기업 21.1%보다 7.0%포인트 높았다. 매출액이 낮을수록 금융비용 부담에 취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실물경제가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주요 증시가 상승 탄력을 잃고 횡보세에 접어들면서 자산 시장을 통한 경기 회복 기대감이나 투자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원자재 가격 및 유가 상승에 따른 국내 경제의 이중 타격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결국 만성적인 내수 부진에 시달려온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고금리·고물가 노출도가 높은 취약 차주들은 자금난 해소의 기회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김 교수는 “연장됐던 기업어음 만기가 돌아오며 늘어난 부도율은 지난해에는 가계에 큰 영향을 줬고 올해는 기업 차례”라며 “취약 차주에 대한 건전성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