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민(28·남·가명)씨는 올해 초부터 50여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낸 끝에 경기도에 소재한 기계·로봇을 설계·제작하는 업체에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기계·로봇 분야에 인공지능(AI)·데이터가 접목될 수 있다는 성장 가능성을 보고 관련 전공을 선택했지만, 첫 직장부터 정규직으로 입사하겠다는 기대는 접었다. 김씨는 “업계에서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계약직이더라도 경력을 쌓아야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생길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로봇회사 임원은 “일부 단순 업무는 AI가 대체하고 있는 데다 고숙련 업무를 고려하면 경력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어 이제 막 졸업한 신입을 뽑는 곳은 거의 없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최상수 기자
청년층 3명 중 1명이 첫 직장부터 단기 계약직으로 내몰리는 것은 청년층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28일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최종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청년층(15~29세)은 276만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2000명 감소했다. 전체 졸업자는 17만1000명 줄었지만 미취업자는 오히려 3만1000명 늘어난 12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졸업생이 줄었는데 취업에 성공한 청년은 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특히 청년층 취업자는 상대적으로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감소폭이 컸다. 정보통신(IT)업 취업자는 지난해 23만4000명에서 올해 18만3000명으로 5만1000명 감소했다.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과 제조업도 각각 2만9000명, 2만7000명 줄었다.
기업의 채용 방식이 신입 공개채용에서 경력직·수시채용으로 바뀌는 것도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를 보면, 취업 경험이 없는 비경력자의 월평균 상용직 취업 확률은 1.4%로 경력자(2.7%)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은은 20대와 30대의 상용직 고용률 격차(17%포인트) 가운데 약 7%포인트가 경력직 채용 확대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노동 경직성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청년층을 한 번 뽑으면 정년까지 책임져야 하고, 이 중에서 경력이 없는 청년층은 능력을 확답할 수 없어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기업은 처음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층을 정규직으로 뽑을 유인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다른 보고서에처 청년층의 미취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 현재 실질임금이 6.7%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청년기에 안정적인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할수록 숙련과 경력 축적이 늦어지고 자산 형성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결국 청년들은 임금 감소를 막고 경력을 쌓기 위해 계약직부터 시작하지만,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데이터처의 ‘사업체 기간제 근로자 현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계약기간 1년 이하 근로자 가운데 계약 종료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7.5%에 그쳤다. 반면 76.8%는 계약 만료와 함께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양 교수는 “AI가 경제·사회 전반에 활용되기 시작하면 오히려 청년층에게 새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이날 관계부처 합동 일자리전담반 회의를 열고 청년 고용여건 개선을 위해 미래인재 양성, 취업 연계, 경력 개발 지원 등을 담은 ‘청년 일자리 회복방안’을 3분기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년 미래인력을 양성해 일자리와 연결하고, 취업한 청년이 지속적으로 경력을 쌓아 성장할 수 있는 지원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