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델의 ‘장기지속’으로 본 안주의 공간성과 독생녀 탄신의 섭리적 의미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의 깊은 흐름을 ‘장기지속(longue duré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브로델은 역사를 영웅이나 정치권력, 전쟁과 같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오랜 세월에 걸쳐 해당 사회를 형성해 온 장기적 구조에 주목하였다. 이때 지리적 환경은 문화와 사회의 성격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하는 능동적인 역사적 요인이 된다. 즉, 브로델에게 지리적 조건은 인간이 머무는 공간적 의미뿐 아니라 문명을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장기지속’의 핵심 의미이다.
인류 문명은 유목과 이동의 삶에서 정착과 안정의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문명의 장기적 변화는 언제나 인간이 놓인 지리적 조건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해 온 지리적 심층 구조는 과연 무엇일까. 한반도는 예로부터 대륙의 거센 압력과 해양의 개방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지정학적 용광로였다. 그 거대한 문명 교류의 최전선이자 대륙과 해양을 잇는 관문에는 서북지역인 평안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천강 유역의 안주는 북방과 남방을 연결하는 교통과 방어의 요충지로서, 평안도의 지리적 성격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브로델 장기지속 관점에서 보면, 평안도 안주(安州)의 공간성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한반도 지명 해석에서 ‘안(安)’이 들어간 명칭은 전통적으로 전란을 피하는 안태지(安胎地), 곧 생명이 잉태되고 보존되는 공간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평안남도 안주는 인류의 오랜 방황과 투쟁이 멈추고 새 생명이 움트는 섭리의 결절점(結節點)이라 할 수 있다. 지명에 담긴 ‘안(安)’자는 집(宀) 안에 여인(女)이 편안히 머무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문자 의미대로 생명이 보호받고 방황이 끝나며, 정착과 안식이 시작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인류의 신화와 종교는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어머니의 품’이라는 원형적 공간을 통해 궁극의 안식을 갈망해 왔다. 그렇다면 안주는 단순히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그러한 인류 보편의 갈망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공간으로 드러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안주가 갖는 지역의 지명이 어떤 섭리적 역사로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본 고는 이러한 역사적·상징적 시각 속에서, 1943년 안주에서 이루어진 독생녀 탄신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일반적인 한 인물의 탄생을 넘어,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집’이 역사 속에 구현된 섭리적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차별의 땅에서 형성된 정체성 – 평안도 서북인의 역사
하늘의 섭리는 풍요로운 중심지가 아닌, 고통과 소외가 응축된 ‘변방’에서 비롯된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갈릴리는 당시 예루살렘 기득권으로부터 멸시받던 주변부였다. 성서 속 사람들조차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46)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곳은 변방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차별과 억압의 토양이 있었기에 기존 질서의 권위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영적 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문명의 장기적 전환은 일정한 역사적 패턴을 반복해 왔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대 정신’은 변방에서 싹트는 경우가 많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중심 질서를 변화시켜 나왔다. 그렇다면 한민족 역사 속에서 이러한 ‘변방의 섭리’가 가장 강하게 응축된 곳은 어디였을까?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답을 조선의 북방, 곧 평안도에서 찾는다. 예로부터 평안도의 기질은 부정한 제도권에 대한 부드러운 타협보다 불의에 항거하는 상무(尙武)의 정신이 그 뿌리이다. 북방의 거친 자연환경과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은 스스로 공동체를 지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강인한 기개와 자존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탓이다. 이러한 정신적 근간은 고대 고구려인의 역사적 기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 평안도 안주 역시 예수의 갈릴리와 유사한 역사적 평행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서북 지역은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정치적 차별과 사회적 천대를 받았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실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한 개혁적 실천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1811년 홍경래의 난이었다. 이 사건은 중앙 권력의 차별 구조에 맞선 서북 민중의 집단적 저항이자, 새로운 시대를 향한 대망 사상이 직접적으로 작동한 계기였다. 이후 평안도 주민들의 의식 속에는 낡은 봉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 고구려 ‘여신’(女神) 문화의 기억과 을지문덕 신화
이 땅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100만 대군에 맞서 독자적 주권을 지켜내고, 부당한 외세와 불의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를 증명한 공간이다. 1847년(헌종 13년), 평안도 안주 유림들이 건립한 을지문덕비는 이 지역 민중이 외세의 압력에 타협하지 않는 주체적 정체성을 삶의 핵심 가치로 체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주적 기개와 독자적 주권 의식은 역사의 이면에서 작동하며, 훗날 기존의 관습과 권위주의적 틀에 타협하지 않고 주체적인 구원의 길을 개척해 낸 독생녀의 강렬한 영적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지역적 토대가 되었다.
고구려 정신의 또 다른 축은 건국 시조 동명성왕의 어머니 유화(柳花)로 대표되는 ‘시조모(始祖母)’의 기억, 곧 공동체를 잉태하고 보존하는 모성적 전설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인들의 세계관 속에서 유화는 신화적 인물이 아닌 민족 공동체를 잉태한 부모적 신관을 상징한다. 불의에 항거하는 강인한 주체성과 생명을 품어 안는 부모적 세계관의 결합, 이것이 바로 안주 특유의 로컬리티(locality)를 형성하는 구조이다. 이처럼 자주적 기개와 모성적 기억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고유한 지역성을 이룬 안주는, 훗날 인류의 안식처이자 완성된 어머니로 강림하는 독생녀를 받아안고 섭리적 역사를 개척하기에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공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정서는 조선 후기에도 평안도 사람들의 정신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였다. 기존의 경직된 성리학적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과 자주적 주체의식을 품게 된 것도 이러한 문화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늘은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과 깊은 부성과 모성적 기억을 동시에 품은 터전을 선택하시어, 거센 역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참부모의 길을 걸어가야 할 독생녀의 내적 토양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안주인들에게 고구려란, 단군의 홍익인간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근원적 정신이며 특히 시조모 유화로 대표되는 부모님 신화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다. 고구려 안주 사람들에게 북방의 강인한 기상과 함께 시조모에 대한 향수와 부모님에 대한 깊은 기억은 지금도 면면히 흐른다. 고구려 시조모에 대한 모성적 기억이 축적된 역사적 공간 평안도 안주. 바로 그러한 오랜 염원이 응축된 곳이기에 한민족은 이곳에서 독생녀를 맞이할 수 있었다.
◆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대부흥회와 바이칼호의 샤머니즘
한반도 북부의 영성은 매우 독특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칼호 일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북방 유목문화의 원초적 영성과 샤머니즘적 생명력은 이 땅의 사람들을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영적 체질로 길러 왔다.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이 서로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져 있다는 세계관 속에서 북방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와 교감하는 영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깊은 영적 토양 위에 19세기 말 서구 기독교가 유입되자,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 지역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외래 종교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신앙 운동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서북 지역은 조선 후기 중앙 권력으로부터 지속적인 차별을 받아온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평등과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메시지에 강하게 반응하였다. 그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가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 지역은 한국 개신교 성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 부흥운동은 회개와 기도, 성령 체험이 힘있게 전파되어 평양 전역을 뒤흔들었고, 그 불길은 곧 평안도 전역과 한반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 통곡하며 회개했고, 공동체 전체가 새로운 신앙적 각성을 경험하였다. 이 사건 이후 평양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영적 부흥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도시를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평안도 지역에서 단순한 교회 성장만이 아니라, 장차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강한 종말적 기대와 메시아적 열망이 함께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많은 신자들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가까이 왔다고 믿었다. 이러한 메시아 기대는 서북 지역 특유의 대망 의식과 결합하며 더욱 강렬한 형태로 나타났다.
◆ 섭리가 선택한 땅, 안주에서 열린 하늘부모님 신화
바로 이러한 영적 분위기 속에서 평안도 안주라는 작은 도시는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하늘의 섭리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1907년 평양을 휩쓴 성령의 불길은 단지 한 도시의 종교적 사건에 그치지 않았고, 북방의 오래된 영성과 결합하여 한반도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영적 각성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활동한 평안도 출신 지식인들은 강한 자유민주주의 의식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지적 풍토를 형성한 특징적인 집단이었다. 평안도는 일찍부터 개신교와 근대교육이 확산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 출신 인물들은 언론·문학·사상 분야에서 개성 넘치는 시민의식과 비판적 지성을 드러냈다.
특히 평안남도 안주 출신의 시인 백석은 자신의 시 세계를 통해 북방의 삶과 정서를 깊이 있게 노래한 인물이었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눈 덮인 들판과 장터, 토속적인 음식과 마을 공동체의 풍경은 우리의 향토적 기억을 넘어, 고구려 이래 이어져 내려온 민족 문화의 집단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백석의 시 세계에서 평안도의 풍경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본연의 고향을 향한 기억의 장소였다. 또한 평안도 출신 작가 황순원은 소설 『학』에서 전쟁과 이념의 분열을 넘어 인간이 본래 돌아가야 할 자리, 곧 순수와 평화적 공간으로서 평안도 지역을 이상향적 가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평안도 출신의 작가들의 세계관에서 이 곳은 단지 지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된 ‘본래의 고향’이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그리움의 터전인 것이다.
그 정서의 바탕에는 강인한 생명력과 함께 오래된 어머니의 기억, 곧 시조모 유화와 같은 북방의 모성적 원형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심층 구조 속에서 북방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자연스럽게 ‘하늘의 어머니’를 기다리는 종교적 감수성으로 이어졌고, 훗날 이 땅에서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독생녀와 참부모 사상을 받아들이고 공명할 수 있는 정신적 토양 또한 그 속에서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1543년부터 400년을 이어온 탕감복귀의 긴 노정은 마침내 1943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그 결실을 보았다. ‘안주(安州)’라는 지명은 이름 그대로 ‘편안한 고을’, 즉 하늘 부모님이 마침내 안식하실 수 있는 땅이라는 계시적 의미를 품고 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당분간은 가볼 수 없는 그리운 곳, 평안도 안주. 이제는 그곳은 인류의 참어머니를 탄생시킨 영광의 성지가 될 것이니, 이제는 안주의 신화가 온 인류를 하늘 부모님의 품으로 인도하기를 갈망해 본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