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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나도 바퀴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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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게시물서 촉발… 인도 청년들 저항 시위 주목
AI·SNS, 21세기 디지털 정치운동의 새 도구로

지난 5월 16일, 이런 짧은 글이 엑스(X)에 올라왔다.

“모든 바퀴벌레가 함께 모인다면 어떨까?”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트윗을 올린 사람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1995년생의 인도인 젊은이 아비지트 딥케. 그도 이 순간에는 몰랐다. 180만명이 읽은 이 트윗 한 개가 이후 인스타그램으로 건너가 보름 만에 2200만명의 팔로어를 모으고, 12년간 장기 집권하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통치를 흔들 줄은.

첫 시작은 우습게도 대법원장이 관계없는 자리에서 내뱉은 한마디였다. “취업도 못 하고 발붙일 곳도 없는 바퀴벌레 같은 청년들이 언론, 소셜미디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활동가가 돼 모두를 공격한다.” 이 한마디가 갑자기 화제를 모은 건 그 앞에 벌어졌던 의대 입시 시험문제 유출 사건 탓이었다.

청년 실업률이 엄청난 인도에선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 또는 의대 입시에 목을 맨다. 그런데 매년 200만명 이상이 응시하는 의대 시험문제가 유출된 정황이 드러났다. 교육부 장관은 재시험 얘기를 꺼냈지만, 인도에선 의대 시험 응시 비용도 부담스러운 가정이 많다. 이 일 때문에 열 명이 넘는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고, 청년층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인 상태에서 대법원장의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딥케는 이런 청년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바퀴벌레였다. 인도 대학에서는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이후 2020년에는 암아드미당(AAP, 보통사람당)이라는 정당에서 소셜미디어 홍보를 담당했다. 2023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 커뮤니케이션대학 PR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심지어 그는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며 차별받아 온 달리트 출신이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동가가 돼 모두를 공격하는 바퀴벌레’가 되기 딱 맞는 배경이었다.

대법원장의 표현은 명백히 경멸적인 언사였지만, 딥케는 직접적인 비난이나 분노 대신 “모든 바퀴벌레가 함께 모인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 속에는 젊은 세대를 하나로 묶는 ‘소속감’과 앞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비난과 분노만으로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장난 같은 트윗 한 개가 바퀴벌레국민당(CJP)이라는 디지털 실체로 발전한 이유다. 일단 사람들이 모이자, 딥케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으로 정당 홈페이지와 강령, 가입 폼과 로고를 만들었다. 팀 하나가 붙어야 할 일을 지구 반대편에서 하룻밤에 끝냈다. 바퀴벌레당의 당원 가입 조건은 “실업 상태고, 게으르며, 늘 온라인에 접속해 있고, 전문적으로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법원장이 비난한 바퀴벌레라면 누구나 당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딥케는 소셜미디어만큼 기성 언론도 잘 이해하고 있었는데, 특히 미국과 유럽의 서구권 미디어가 돌아가는 생리를 잘 깨닫고 있었다. 그는 우선 인터뷰를 주저하지 않았다. 로이터, BBC, AP, 알자지라, 도이체벨레 등이 그를 찾아갔고, 그는 기꺼이 인도 젊은이들의 좌절을 알리는 대변인이 됐다. 서구 매체들은 영어로 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인텔리 젊은이를 좋아했다. 인도 정부가 무작정 그를 탄압하기 힘들었던 이유였던 한편, 딥케가 미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7월 20일 국회로 향하던 시위대에 경찰이 최루탄과 곤봉을 쓰자, 시위는 뉴델리를 넘어 여러 도시로 확산됐다. 결국 25일 교육부 장관이 사임했다. 이 시위가 네팔과 방글라데시 등 인근 국가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던 Z세대의 시위처럼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점도 이유로 꼽혔다.

정당이나 기성 정치인 같은 뚜렷한 정치적 구심점이 없는 정치세력화는 요즘 젊은 세대의 글로벌한 특징이다. 그래서 이게 딥케만의, 인도만의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새로운 미디어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고,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수많은 별개의 사건들을 공유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라났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동일한 기술과 소셜미디어라는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Z세대의 세기, 이게 21세기다. 20세기 정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