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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유럽은 중국 없이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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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중국은 유럽에 거대한 시장이자 저렴한 생산기지였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무역 상대가 아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희토류, 철강, 디지털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유럽 산업의 경쟁자이자 공급망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2025년 EU는 중국에 약 1996억유로를 수출했지만, 중국으로부터는 약 5594억유로를 수입했다. 그 결과 EU의 대중국 상품무역 적자는 약 3598억유로에 달했다. 2026년 1분기에도 EU의 대중국 상품무역 적자는 980억유로로,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문제는 이 적자가 단순한 무역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유럽은 이미 러시아산 가스 의존이 얼마나 큰 전략적 취약성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이제 유럽은 같은 실수를 중국산 핵심 소재와 첨단 부품에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EU가 중국과 단절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중국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며, 유럽의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에도 중국산 부품과 원자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EU의 목표는 ‘탈중국’이 아니라 ‘위험 분산’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EU 방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은 한국과 EU의 관계가 단순한 교역 관계를 넘어 경제 안보, 공급망, 디지털 통상, 인공지능, 반도체, 방위산업, 탄소중립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측은 한·EU 경쟁력 파트너십을 출범시키고, 고위급 경제 대화를 설치했으며, 디지털 통상협정에도 서명했다.

한·EU 관계의 경제적 무게도 결코 작지 않다. 2025년 한·EU 상품교역 규모는 약 1242억유로에 달했다. EU가 중국 의존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한국은 신뢰할 수 있는 대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EU의 탈의존 전략은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부담을 안긴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배터리 규정, 공급망 실사, 철강 수입 규제, 디지털 규범은 모두 한국 기업이 넘어야 할 장벽이다. 따라서 한국은 EU와의 협력을 강화하되, 우리 산업에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정교한 통상외교를 병행해야 한다.

한국의 선택도 분명해야 한다. 중국을 감정적으로 배척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깊은 경제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EU와는 규범과 기술, 산업 협력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편 가르기가 아니라 품목별·산업별·기술별 위험 분산 전략이다.

유럽은 중국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중국에 휘둘리는 유럽으로 남을 수도 없다. EU 탈의존 전략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도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필요하지만, 그 의존이 한국의 산업전략과 외교적 자율성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와 더 많이 거래하느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 때 누구와 함께 버틸 수 있느냐다. EU의 탈의존 전략과 한·EU 정상회담은 한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중국과 거래하되, 중국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선택이며, 한·EU 협력이 갖는 전략적 의미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