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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참을 수 없는 국회의장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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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대통령 연임 개헌’ 발언
논란 확산하자 “오해 일으켜 유감”
청와대도 “현 대통령 임기 연장 不可”
與와 거리 두고 정치적 중립 지키길

이재명 대통령 임기가 4년 가까이 남았는데 야당이 벌써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자 조정식 국회의장은 무슨 총대라도 멘 것처럼 불쑥 ‘대통령 연임 개헌’을 꺼내 들었다.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부터 여권 일각에선 ‘국민이 원하면’, ‘국민의 결단만 있으면’ 같은 단서를 달아 대통령 임기 연장의 군불을 때고 있다. 조 의장이 아무리 여당 출신이라도 그런 움직임까지 동조하는 것은 입법부 수장답지 못하다. 조 의장은 결국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켜 유감”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이번 논란은 굳이 따지자면 검사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시도가 발단이 됐다. 보완수사권 일부 존치를 주장해 온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최근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검찰을 혐오하는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과 끝까지 대치해야 하는 처지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정부를 겨냥해 “민주당 강경파 눈치만 살피면서 강경파의 뜻에 끌려다니고만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장관의 사의 표명을 “이재명정부 레임덕의 신호탄”이라고 규정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핵심 부처 장관이 딱히 경질 사유도 없는데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여권에 크나큰 악재임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대통령과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정권 입장에서 레임덕 운운은 야당의 정치 공세로 치부해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얘기다. 이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가운데 청와대가 ‘정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6선 의원을 지낸 조 의장이 느닷없이 대통령 연임 개헌을 입 밖에 낸 것은 정 장관 거취에 쏠린 국민 시선을 다른 이슈로 돌리면서 레임덕 주장을 신속히 진압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대표 경선을 앞두고 김민석 전 국무총리로 대표되는 친명(친이재명)계와 정청래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청(친정청래)계 간 갈등이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격화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어느 강연에서 이 대통령 임기와 관련해 “요새 사람들이 ‘5년은 너무 짧다’고 한다”며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보다 2개월 전에는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생 조원철 법제처장이 국회 답변 도중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라고 발언했다. 친명계 사이에 이 대통령 임기 연장에 대한 바람이 널리 퍼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조 의장으로선 친명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이번 경선에서 친명계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어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 연임에 관해 “우리나라 헌법 체계가 허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대한민국 헌법 128조 2항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이 원한다면”을 외치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파괴한 권력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입법부 수장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책무가 바로 그런 사태를 막고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국회가 국회법을 고쳐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것은 2002년 이만섭 의장 시절의 일이다. 이 의장은 여야 사이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았다. 김대중(DJ)정부 당시 국회를 이끈 이 의장은 여당 의원들은 물론 DJ까지 직접 나서 요구한 법안의 날치기 통과를 끝내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다.” 2015년 타계한 이 전 의장이 남긴 명언이다.

진작 민주당을 탈당했으면서도 여전히 여당 의원의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난 듯한 조 의장의 깃털처럼 가벼운 언행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조 의장은 터무니없는 대통령 연임 개헌 운운하기에 앞서 이 전 의장을 모범 삼아 입법부 수장의 역할이 무엇이고 그 처신은 어때야 하는지부터 고민하길 바란다.